여행 2일차...

7시에 일어나 샤워후 빈둥대다 8시가 되어서야 호텔 구내식당으로 내려가 한식부페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미역국이 속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몽골에서는 하절기 낮이 너무 길어 일과 시작을 좀 늦게 한단다.

10시 반(몽골시각으로 9시 반)에 집결, 테를지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는데 약 20분 가량은 포장도로인데도 말 탄 느낌을 주는 구간을 지나 고속도로 구간을 달리는데,

고속도로라는 게 그냥 살짝 포장만 한 2차선 길이다.

게다가 경사가 있는 길은 고속도로라 해도 겨울에 빙판이 되면 차들이 못다니니까 아예 비포장으로 두었다.


<뭐 대충 이런 모습...>


가는 길에 경치를 구경하는데, 대부분 넓은 광야와 구름이 있어도 구름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

거의 비슷한 광경들이다,

 

 


<하늘은 무조건 파랗지는 않고, 가끔 구름 낀 곳은 이런 풍경도 보인다>


아, 그리고 울란바토르를 조금 벗어나니 작년 ASEM회의 때 각국 정상들이 묵었다는 숙소가 있다.

지금은 몽골의 부자들에게 모두 팔려나갔다나...


<멀리 보이는 각진 주택들이 ASEM회의때 사용한 정상들의 숙소이다>


한참을 달리다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길가의 개에게 개밥을 챙겨주고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간다.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자기 집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를 길 가다 아무 개에게 준다고 한다.

본래 몽골인들이 동물을 중시하는 탓도 있지만 집안에 음식물 쓰레기도 안남고 좋지 않냐고 한다.

그렇다마다...


가이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몽골인은 성년이 되면 국가에서 1인당 1평방킬로미터(30만평)의 땅을

무상지급한다는 말에 다들 부러워했다.

하긴 남한 면적 15배의 국토에 300만명밖에 안되는 인구라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1시간반 정도 달리다 길가의 슈퍼마켓에 들렀다.

큼지막하고 깔끔했다.



몽골화 투그릭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마켓 안을 둘러보기만 하고 나왔다. 살 것도 없었지만...

밖에 나오니 햇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다. 서둘러 선글라스를 꼈다.


조금 더 가다 이번에 기사가 주유소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그런데 참 속도 좋은 게, 세월아 네월아... 도무지 급한게 없다,

기름값도 싸다. 경유이겠지만 리터당 우리 돈으로 약 800원 정도 한단다.


출발한지 1시간 반 정도 되어서 몽골의 서낭당 '오워'에 들렀다.

뭐 별다른 중요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돌무더기일 뿐이었다.

몽돌인들은 '오워'를 세번 돌면서 돌 세개를 던지며 소원을 빈다고 하는데, 던질 돌도 없고

땡볕도 너무 강해 대충 한번 돌아보고 인증사진만 하나 찍은 뒤 그냥 자리를 피했다.




<오워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


가는 길에 공룡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지역이 있어서 지금도 공룡 모형을 여럿 세워 놓았는데,

그런 연유로 해서 유네스코에서는 1964년 테를지국립공원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이윽고 테를지국립공원 지역에 진입하자 하여간 괜챦은 풍경들이 나타난다.

 





뭐든 다 이쁘다.

그런데 길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워낙 경치에 마음을 빼앗겨 도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을 틈이 없을 뿐이지...


울렁대는 길을 한참 가서 공원 가장 안쪽에 있는 '아리야발'사원부터 들렀다.

사원에 이르는 계단 한 단의 높이가 50cm가 더 되는 것 같다.




첫계단을 짚는데 무릎이 '빠지직' 한다.

이래서 여행은 젊을 때 다녀야 하는 게 맞긴 맞아...

힘들여 계단을 다 올라 사원앞에 서니 다리가 약간 후들거린다.


이 사원은 몽골내 사원중 기가 가장 세다고 한다, 그 말인즉 기도빨이 세다는 말씀...

사원 안에 들어가 108배 할 배짱도 없어서 사원 안의 불상을 보고 속으로만

'우리 애새끼들 잘 좀 보살펴 봐주이소.." 하고 빌었다.


다시 그 험한 계단으로 내려올 엄두를 못내고 108가지의 법문을 기재한 간판들이 늘어선 

옆길로 돌아서 내려왔다.


<절 입구 계단 끝이 내 머리를 찌르는 듯한 모습...>


<사원 들어가는 정문>


<러시아제 4륜차 '푸르공', 낡아도 고장 없이 험한 길을 잘달린다>


내려와서 한숨  돌리며 인증사진 한번 더 찍고... 뒤로 돌아 나가며 테를지국립공원의 수호신이라는

거북바위에서 내려 사진만 찍고 점심 먹으러 간다.


 <거북바위>


이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거북이지만 반대쪽에서는 전혀 아니다.

관광객들이 거북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가기를 강요라도 하듯이 포토존을 별도로 설정해두었다.

거기서 다들 사진 찍는다.


<이때가 한국 시각으로 13:45였다.>


다들 사진 찍고 14:15경 점심 먹으러 관광객용으로 조성된 듯한 현지 민속촌으로 출발했다.

거의 도착해서는 물구덩이에 차가 뻐져 다들 차에서 내려 걸어서 식당까지 갔다.



크지 않은 게르에 깔끔하게 단장해서 손님을 맞으려 했는가 본데, 우리 일행중 한명이 게르 냄새가 역겹다고 해서

밖에다 점심 상을 차렸는데, 이번에는 옆에 매인 말에서 냄새난다고 투덜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가 차려져 나왔는데, 수태차(우유로 만든 차)와 함께 밥, 양고기, 감자 범벅 등등

내 기준으로는 수준급이었다.

가져간 소주로 반주도 한잔 겻들이니 어디 감히 호텔식을 여기다 비하랴 싶다.


15:00 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소떼가 길을 막고 어슬렁 어슬렁 지나간다.


 

몽골의 길 위에서 모든 차는 소떼보다 우선순위가 낮다.

소떼가 지나가야 차가 갈 수 있다.


좀 더 가니 비가 온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는 비가 오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햇빛이 비친다.

드넓은 평원에서 각 방향의 기상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16:00 징기스칸 기마상 공원에 도착했다.

이는 몽골정부에서 징기스칸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여 8년전엔가 건립했다는데 높이가 47m이며,

기마상 내부에 엘리베이트가 있어서 위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기마상의 위치는 징기스칸이 젊었을 때 황금채찍을 주운 자리라고 하며, 기마상은 100여km 떨어진

그의 고향인 '헨티아이막'을 향하고 있다.



말머리 위가 사람이 올라가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입장료가 8,500투그릭, 한화로 4,250원 정도인데 달러로는 얼마냐고 물으니 5불이란다.

4불씩 해도 될텐데... 싶지만, 10불 내고 후배와 얼른 들어가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예까지 왔노라는 의미의 인증사진>


<징기스칸 기마상이 바라보는 방향에 그의 모친 상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풀경>


샛파란 하늘과 녹색 평원이 눈에서 어느정도 시들해질 무렵 이제는 게르 체험을 위해,

또 밤에 별을 보기 위해 게르캠프로 갔다.


<왼쪽의 울란바토르에서 한참 동쪽에 있는 하늘색의 징기스칸 기마상과 붉은 색의 훈누캠프>


캠프는 기마상에서 얼마 안떨어진 거리에 있는 '훈누톨'이란 곳이다.

'훈누'는 중국어로는 '흉노'라 표기하며, 중국을 극도로 싫어하는 몽골사람들은 흉노라는 말을 거의 안쓴다.

그리고 '톨'은 Tour, 그러니까 합쳐서 '훈누톨'은  '훈누관광사' 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훈누캠프, 산 경사면에 회사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구글에서 위성사진 촬영할 때 지나던 항공기까지...>


16:45 훈누캠프에 도착했다.

그런데, 저녁식사 시간인 20:00까지 자유시간이란다.

20:00라면 한국시각으로 21:00인데...


네시간 동안 뭘하냐며 난감해 하고 있는데, 내일 아침에 예약된 승마체험을 오늘 하겠냐고 해서 말해 뭐해 당연하지...


40불 내고 후배랑 둘이서 먼저 말을 타기로 했다.

몽골의 말은 서양 말들과 달리 키가 좀 작은데, 그래서 올라타기는 수월하다.

승마장구랍시고 조끼와 각반을 채워주는데, 그게 안전에는 그다지 기여할 것 같지 않았다.

폼 잡는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지만...



승마체험이란 가이드가 우리 두사람의 말 고삐를 잡고 1시간동안 원거리를 갔다오는 것이었다. 

조금 빨리 달리다 천천히 가다를 반복하는데, 말이 조금 달리는 듯하면 낭심이 튕겨져서

많이 아팠지만 가이드랑 말이 안통하니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도중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몇방 맞았지만 몽골 평원에서 말을 탔다는 기분 좋은 느낌에 그때까지

딴 생각이 없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후배와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다 멀리 보이는 징기스칸 기마상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자고 해서 찍은 사진이...



<47m가 크긴 큰가 보다. 그 거리에서 저렇게 보일 정도니...>


몽골사람들이 보면 자기네 영웅을 모독했다고 할지는 몰라도 나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고,

예전에 어디에선가 사진 장난하던 기억이 나서 해본 것일 뿐이다.


그리고 샤워하고도 한참을 더 있다가 나온 별식, 양고기를 불에 달군 돌로 익힌 '허르헉'.

육식을 안좋아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걸 안먹어 볼 수는 없는 것, 많이는 아니라도 뼈가 없어서

가장 다루기 쉬운 한덩이를 골라 썰어 먹어봤다.


<야채를 곁들여서... 그리고 소주도...>


명불허전, 몽골 대표음식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몰랐는데, 몽골은 우리네와 달리 모든 고기에서 피를 안빼고 요리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기 냄새가 많이 나는데 한국 사람들을 비롯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피를 빼고 요리를 해준단다.


21:30경 게르에 입실했는데, 그 며칠동안 몽골에도 계속 비가 와서 염소털로 직조한 게르 외피가

조금 젖어서 염소 냄새가 좀 난다고 한다.

까짓거 뭐...



그리고 별관측용 전망대... 그게 바로 나무로 짠 평상이다.

거기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건데, 몽골에 도착한 이래 줄곧 떠나지 않던 비의 여운이 그제서야

무얼 뜻하는지 명확해졌다.

별 보기는 틀렸구나...


좀 있으니 가이드가 오늘 별 보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계획했던 별자리 관측영상 시청을 취소하자는데

그래도 되겠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후배와 나는 캠프촌 야외무대 시설로 가서 칭기스보드카를 나누어 마시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랬다.


<저멀리 동쪽으로는 비교적 맑은 편인데 바로 머리 위는 먹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다들 게르로 들어가 잠을 청할 무렵, 그래도 혹시나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혼자 게르 밖에 청승맞게

앉아 기다리며 하늘을 살폈다.


<본래 이런 광경을 바란 것인데...>


깜빡 졸기도 했지만 그 성의가 가상해서인지 잠시 북동쪽 하늘이 훤해지면서 별들이 보이길래 게르 안에 뛰어 들어가

자는 사람까지 다 깨워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 무슨 조화인지 그새 구름이 비었던 하늘을 덮어버린다.

무안하게 괜히 엄한 사람들 잠만 깨운 셈이 되었다.


<달도 구름에 가렸다>


애꿎은 밤하늘만 몇장 찍어 봤지만 날샌 은하수가 갑자기 나타날 리도 없쟎은가.

'주먹만한 별이 손에 잡힐 듯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체험담은 확인하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물러서야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간절한 것이 두가지 생겼다.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고 싶은 것, 또 하나는 어릴 때 늘상 보던, 밤하늘의 은하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눈 감기전에는 이룰 수 없을 것이라 더이상 얘기를 할 수 없으니 얘기를 접는다.


하여간 어느날 갑자기 은하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같은 동네 사는 후배에게 "너, 별구경하러

몽골 한번 안가볼래?"하고 뜬금없이 물었는데, "그러죠"라는 한여름 냉풍기 같은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랴부랴 여행사 택해서 짧은 패키지 여행을 준비했다.

그래서 글 제목이 메뚜기여행이다.

예약금 넣고, 비자발급 신청도 하고... 최종적으로 잔금까지 보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사실 좀 들뜨기도 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몽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몽골어 회화도 좀 곁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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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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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56만 4,116km²

인구         3,051,900명(2017)

수도         울란바토르

공용어      몽골어, 러시아어(상용어)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할트마긴 바트톨가

                * 임기 2017년 7월 10일 ~

총리         자르갈톨라긴 에르데네바트 

                * 임기 2016년 7월 7일 ~

종족구성   몽골인 96%, 카자흐인 4%

종교         불교 53%, 무교 38.6%, 이슬람교 3%

GDP        111억 6400만$(2016, 명목상)

                * 1인당 GDP(명목) : 3,704$(2016)

통화        투그륵(төгрөг)

국가        몽골국(Монгол Улс, 몽골올스)

            * 몽골어 표기: Монгол Улсын төрийн дуула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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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연합(UN) 가입 : 1961년



 지리

내륙국으로 바다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띈다. 

또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지형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 

서쪽 끝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과의 접경지역에 매우 높은 알타이 산맥이 존재하며, 

중부에는 비교적 낮은 항가이 산맥이 존재한다. 

그보다 더 동쪽엔 항가이 산맥보다 낮은 헹티 산맥이 있다. 

남동부는 낮고 평평하지만 거의 전 지역이 사막으로 덮여 있는데 그 유명한 고비사막이다. 

사막 외곽엔 초원이 있으며 북부 지역엔 숲도 있다.


큰 호수도 몇개 존재하는데 서북부 '옵스'호(Увс нуур)는 염호(鹽湖)로 제주도 2배 크기 정도이며 

몽골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옵스'호보다 약간 작은 '훕스굴'호(Хөвсгөл нуур)도 유명하다.



 기후

기후는 몽골 전지역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건조하고 연교차가 극단적으로 크며 겨울이 추운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연교차가 커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건조해진다. 

몽골 서부 '올랑검'은 1월(-32.1℃)과 7월(18.9℃) 평균 기온의 차이가 51℃에 이르며, 

동부 '처이발상'도 1월(-20.5℃)과 7월(19.8℃) 기온 차이가 40℃에 달한다. 

강수량은 다르항(357mm)이나 므릉(207mm) 등 북부 지방이 사잉샹드(111mm)나 

달랑자드가드(126mm) 등 남부 지방보다는 많은 편이다. 

열대야는 없지만 일교차를 고려할 경우 여름철 낮 최고기온은 한국과 별 차이 없거나 더 더울 수도 있다.


겨울엔 '조드'(зуд/Zud)라는 혹한이 찾아와 큰 피해를 준다. 

조드가 일어날 때마다 가축이 죽는데, 1944년 700만 마리의 가축이 죽는 극심한 혹한이 있었고, 

최근 2010년에도 서북부 옵스 지역에서 50일 동안이나 기온이 -48℃ 밑으로 떨어지는 혹한으로 

전국 가축의 17%인 2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역대 최저 기온은 앞에 말한 옵스 지역에서 기록된 -58℃. 이런 혹한과 눈보라 때문에 

인명피해도 발생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인해 "전사는 화살 한발에 죽고 富者는 

조드(зуд) 한번에 망한다." 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首都인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27도라 한다. 이쯤 되면 그냥 대놓고 시베리아 수준인 걸 넘어서 

이르쿠츠크나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남시베리아보다도 추운 수준이다. 

실제로 나라 자체가 시베리아 남쪽에 바로 붙어 있고 수도도 시베리아에서 가깝다.


덤으로 몽골이 우리나라보다 북쪽에 있어 굉장히 북쪽에 있는 나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프랑스 파리와 위도가 비슷하다. 

덤으로 우리나라 또한 유럽기준으로는 꽤나 남쪽이다. 

추운 걸로 유명한 철원도 따뜻하고 살기 좋다는 남부 이탈리아 정도이고, 남한 전체를 따진다면 

대체로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기온차는 울란바토르와 파리가 비슷한 위도인지 인식하기 힘들 정도다. 

기온의 경우 위도뿐만이 아니라 격해도나 해류, 해발고도 등 다양한 기후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온차가 위도와 상관없는 경우는 많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빼면 거의 극지방까지 올라가도 

이런 날씨는 보기 힘들다. 

참고로 스웨덴 키루나(북위 67도)의 겨울 평균 기온도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사실 몽골의 추운 기후의 원인을 찾아보면 '대륙 한가운데'라는 위치 외에도 

해발고도가 높은 편인 것도 원인.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의 고지대이다.


'훕스굴'주 '터성쳉겔'(Тосонцэнгэл)이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압이 기록되기도 했다. 

1,085.6hPa.



 지질/생물

고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땅만 파면 공룡 화석이 나오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프로토케라톱스나 오비랍토르, 벨로키랍토르, 피나코사우루스, 사이카니아, 

테리지노사우루스, 타보사우루스, 사우롤로푸스, 갈리미무스 등 인지도가 꽤 높은 공룡들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견되었다.


게다가 몽골의 몇몇 지층은 백악기 때부터 사막이어서 간단한 손도구만으로도 지층이 쉽게 제거된다. 

대신 그 유명한 타르보사우루스가 발굴된 백악기 지층인 네메그트 층은 예외적으로 

사막 지층이 아니라 범람원 지층이었다.


미국에 전시된 타르보사우루스의 상당히 완벽한 형체의 뼈도 몽골에서 1924년에 헐값에 구입해 가져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몽골에선 이런 헐값으로 가져오려면 어림도 없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비롯한 고생물학자들이 몽골에서 발굴할 때 보면 정부기관 인사들 및 몽골 학자들도 

반드시 가서 같이 연구하고 감시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무단으로 해외로 가져가려던 해외 학자들이 걸려 추방당한 뒤로 이렇게 감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룡 이외에도 히아에노돈이나 엔텔로돈, 곰포테리움, 파라케라테리움 같은 흐산다골 지층의 

신생대 포유류의 화석도 꽤 유명한 편이다. 


몽골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대륙에 중심으로 사는 종이며 마못이나 토끼 등 설치류가 많다. 

초원에는 몽골가젤이나 사이가영양 등 우제류가 있으며 몽골야생마가 서식한다. 

털이 길고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도 많이 사는데, 중동의 단봉낙타가 야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이 키우는 개체만 남은 것과 달리 쌍봉낙타는 몽골에서 야생에도 많다. 

맹수로는 주로 늑대가 많은데 약 1만 마리 수준이다. 

그 밖에 눈표범이나 불곰도 존재한다.



 역사

몽골은 몽골제국의 역사를 제외하면 부족들간 대립의 역사였다.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후 몽골판 백백교 교주 '운게른'의 사이비종교급 통치를 겪고 '담딘 수흐바타르'의 지도하에 

독립한 후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지배가 한동안 계속된 뒤 자체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사회

휴대전화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초원과 사막이 중심인 국토 지형과 소수지만 존재하는 유목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닐 듯. 

대신 공업기술과 생산력이 부족해서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몽골에서 몽골어는 키릴문자로 표기하지만 불편하다보니 핸드폰으로 문자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할 때는 

그냥 로마자로 쓴다. 

유목민의 경우 발전기나 무전기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유목민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기 때문에 말을 잘 모는 편이다. 

어린이들도 등자나 안장없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편. 

특히 차량이랑 오토바이가 비싸다 보니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시아가 몇 나라 안되긴 하지만 하여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높은 살인률을 보이는 나라다. 

10만명당 7.5건으로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다. 옆 나라 중국은 0.8건.



 언어

몽골어가 공용어이다. 

하지만 서쪽의 카자흐족들은 카자흐어만 사용하며 몽골어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다. 

몽골어가 키릴문자를 쓰고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국가가 된 탓도 크다. 

그러다 소련 붕괴 이후엔 영어,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도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07년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러시아어도 다시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었다.



◇ 인구

몽골의 고민은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남한 면적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인구가 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땅은 넓은데 인구가 너무 적은 경우로 언급된다. 

300만 인구조차 그나마 이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2009년의 몽골의 인구 밀도를 남한에 그대로 적용하면 남한 인구가 16~17만 명밖에 되지 않는 경우와 같다. 

참고로 몽골의 가축의 수는 도합 7천 5백만 마리가 넘는다. 

그리고 몽골내에서 사는 몽골인보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서 사는 몽골인이 훨씬 많다. 

내몽골에 사는 몽골인은 500만명을 넘는 정도.


그래도 출산율이 2명대 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보니 인구 증가율 자체는 상당한 편이고 

고령화 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게 위안. 

2015년 1월에 300만 명을 드디어 돌파했다. 


그린란드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 및 자치령이다. 

독립국 중에서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1제곱킬로미터당 인구가 무려 2명으로, 세계적으로 텅 빈 나라로 주로 언급되는 호주보다도 낮은 인구밀도를 자랑한다. 

750년 전에는 되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사실 몽골제국 시절에도 인구가 하도 적어서 원나라 시절 몽골인은 고작 1.5%였다.


하지만 한랭건조한 기후, 초원과 사막이 대부분이고 큰 하천이 없어 농경에 불리한 지리적 조건 탓에 

광활한 방목지가 필요한 목축업이 주력산업이므로 인구가 증가할수록 오히려 인구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몽골족이 주류지만 서쪽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몽골 서부 '바잉을기 아이막'의 경우 주민의 90% 이상이 카자흐족이다.  

그 외에도 투바인, 에벤키인, 러시아인, 중국인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굉장히 심각하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인구가 전 국민의 3분의 1인 100여만명이다. 

최대도시 울란바토르는 인구가 백만 명이 넘는데 제2~3도시인 다르항이나 에르데네트의 인구는 

고작 10만명 내외. 나머지 지방도시들도 1, 2만 명이면 큰 도시에 속한다. 

그리고 몽골의 모든 기간시설이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백만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여러 모로 굉장히 버겁다.



 교육

소련이 존재하던 시기에 몽골에서는 소련의 막대한 지원에 따라 국토 전역에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몽골 특유의 유목생활로 인해 취학률은 70%를 넘지 못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초등학교에 

기숙사를 설치해서 학생들을 취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등교육은 거점(각 주에 2~4개교)에 설치하여 기숙학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통해 입학생을 받는다. 

몽골 내에서는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상당한 고학력자로 인정받기 때문에 지방 관청이나 기업체에 취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몽골의 대학들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만 있으며, 전부 국립대학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소재한 대학에는 1942년 소련 당국에 의해 설립된 국립종합대학(National University)이 있다. 

의학부, 수리과학부, 인문학부, 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경제학부, 외무학부, 경영학부, 법학부, 사회학부, 

언론정보학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외국어문학부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의학부 부설 병원이 설치되어 있다. 


1925년 몽골 공산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중앙사범대학(Central Education College)도 있다. 

이외에도 90년대 초반 몽골 교육부의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국립과학기술대학(Nation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1950년에 별도로 설립된 

과학기술대학이 있었지만,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의 이공학부를 떼어 내어 

기존의 과학기술대학과 통폐합하였다. 


그 밖에도 국립농경대학(National Agriculture College), 국립보건대학(Health Science University) 등이 있다. 

이 국립보건대학은 국립종합대학 내의 의학부와는 별개의 학교로 기존의 한 곳이던 의료 인력 양성 기관을 

다양화하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국립종합대학의 의학부는 말 그대로 의사만을 양성하지만, 이 곳에서는 간호인력과 의료행정 인력도 함께 양성한다. 


이들 대학의 입시에서 특이한 점은 중앙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격인 국립종합대학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국가 공무원으로의 취직이 보장된 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그 나라의 首位대학의 입시 성적을 

압도하는 현상은 아프카니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케냐, 미얀마 등과 같이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으로,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고 사회적으로 직업이 다양하지 않은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그 학력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는 상황의 하나다. 

동아시아권에 대학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양산되는 

고학력 실업자(룸펜)와 마찬가지. 

이러한 현상에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도 일정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몽골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교사가 수십년간 1위를 독점해 오고 있다.


그래서 몽골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중등학교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사범대학에 지원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통

몽골은 면적이 매우 넓은 나라지만 인구밀도는 세계 최하위권인 탓에 교통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항공교통이 발달해 있다. 

전국에 46개의 공항이 있으며 수도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외국인 요금과 몽골인 요금이 달라서 한국인의 경우 절대 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


울란바토르 시역과 그 근교는 어느정도 도로가 갖춰져 있는 편이지만 그 외 전국은 제대로 된 도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지도상에 대로처럼 표시된 길들도 실제로 가보면 비포장도로에 난 타이어 자국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길인 경우가 많고 교통표지판 따위도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직접 운전할 경우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인 곳도 많다. 

버스나 미니밴이 정기적으로 울란바토르와 주요 주도(울란바토르 외에는 10만 명이 넘게 사는 도시가 하나도 없으니 

기껏해야 한국의 읍내 수준) 사이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기는 하나, 울란바토르~서부의 '바양을기' 같은 경우 

길게는 50시간 걸리니, 험한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느니 비행기를 타는 편이 좋다.


철도 교통도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몽골의 남북을 종단하는 1,113km의 몽골 종단철도

(중국 북경~러시아 울란우데 연결) 하나뿐이다.


몽골에서 주요 철도는 사실상 중국 베이징역에서 출발해 몽골 울란바토르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을 통해 

러시아 철도로 이어지는 몽골 종단철도 단 하나라고 봐도 좋다. 

몽골 종단철도에서 뻗아나가는 약간의 지선이 몇 있으며, 동부 '처이발상'시에도 러시아 국경에서 

넘어오는 약간의 철도가 있으나 몽골 종단철도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고 몽골 동부는 여행자들도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 존재감이 없다. 

때문에 철도를 이용해서 몽골 내륙을 여행하겠다는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 

그나마 이 몽골 종단철도 인근에 있는 '다르한, 사인샨드, 수흐바타르, 자민우드'나 몽골 제2의 도시 

'에르데네트'같은 도시들은 철도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두편씩은 다녀서 제한적으로 철도여행이 가능하긴 하다. 

몽골 철도는 운임도 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 포장상태가 빈약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보다는 그래도 편하다.


울란바토르 이외의 각 주의 주도는 항공 교통으로 연결된다. 땅이 워낙 넓고 도로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짧은 거리라도 비행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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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여름이라도 밤에는 섭씨 5도까지 내려가서 춥다더라 등등의 온갖 정보를 제대로 소화도 못시킨 채

구 받아들여 계획에 반영했다. 다운점퍼에 슬리핑백까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더울지 몰라서 여차하면 겉옷을 하나 더 껴입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고

대략 가을철 복장으로 준비를 했다.


드디어 8월 10일 하루종일 짐을 확인, 또 확인하며 출발시각을 기다렸다.

인천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이 시골에서는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아 8월 11일 새벽 1시에

후배의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다.


새벽 3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장기주차타워에 차를 주차시키고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입도 몸도 심심해서 뭐가 없나 두루 살폈지만 그 새벽에 내 생각을 살펴줄 그 무엇도 없었다.

하릴 없이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 밖에...


5시 40분이나 되어서야 여행사측 직원이 나타나 일정계획을 설명하고 비자발급 때문에 받아서 갖고 있던

여권을 돌려주더니 바로 가버렸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공항청사 안은 생동감이 확~ 살아난다.


어쨌건 그렇게 시간은 가서 드디어 출국 수속을 시작한다.

잘모르면서 여기저기 안내문을 보고 후배한테 '저쪽으로 가야 돼'하고 앞장서서 갔더니 이미 줄은 길게 늘어져 있고.....

그렇게 해서 들어갔는데, 안에서 보니 일부러 이쪽까지 올 필요가 없었었다.

에이! 후배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네...


안에 들어와서 돌아다녀도 면세점에서 소주 좀 사는 것 외에 할 일도 없는데, 이곳 저곳 기웃기웃하며

한참 시간을 때웠다.



(우리를 태우고 갈 A-330 항공기)


7시 55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도 한참을 머물다 8시 20분이 되어서야 이륙했다.


밤새 전혀 자지를 못한 터라 몹시 졸리다.

눈을 좀 붙이려는데, 기내식을 배식한단다.

기내식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것, 억지로 잠을 깨서 배식 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죽과 오믈렛중 어느걸 원하냐고 해서 잘알지도 못하지만 그냥 오믈렛을 달라고 했다.

와인까지도 몇잔 받아 마시면서 훌륭하게 아침 식사 겸 해장절차를 마쳤다.


좌석이 가운데라 내다 볼 창이 없으니 그냥 폰에 저장된 음악이나 들으며 시간을 때웠다.


몽골 하늘이 가까워지자 요동이 심하다. 그통에 화장실 가려다 승무원한테 두번이나 제지당했다.


11시 20분(한국 시간) 울란바토르 징기스칸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면서 어프로치할 때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니 그야말로 둥그스럼한 구릉이 많기는 많다.

그리고 말이 국제공항이지 우리네 시골공항보다 크지 않다.

그래도 A330 기종이 착륙할 수 있으니 라오스의 비엔티엔공항보다는 낫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공항이 작다고 울란바토르에서 좀 떨어진(70여km) 곳에 새로 공항을 건설하고 있는데,

현 공항 활주로보다 약 1.5배 정도로 길다.

그 공사를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에서 시공하고 있단다.

아마 급속히 늘어나는 관광객수를 감당하기 위해 점보기 등 초대형 항공기 취항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2050년까지 수도까지 옮긴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하늘색 선 안은 현 공항, 아랫부분의 붉은 색 안은 새로 건설중인 공항>


<공사중인 신공항>


입국수속을 하는데, 몽골에 머무는 곳을 기재하지 않아 '빠꾸'당했다.

여행일정 1일차 숙소(선진그랜드호첼)를 적어넣으라는 조언을 듣고 돋보기 안경을 억지로 맞추어 가며

그 칸을 채우고 나서야 통과했다.

8명의 일행중 가장 늦게 팀에 합류했는데, 여태껏 그런 일이 없다가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창피하기도 하고...

하여튼 짐을 다 챙겨서 일행을 태우고 다닐 마이크로버스에 타자말자 11시 50분부터 바로 우리 팀의

여행일정이 시작되었다.


울란바토르시내로 들어가 몽골 불교의 요람인 '간등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운전기사의 운전습관이 점쟎지는 못하다.

아니 그보다는 거기 운전문화가 성숙되지 못했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시내 어디를 둘러봐도 길거리에 나와 있는 차의 80%는 일본의 토요타 차량, 10%는 그 나머지 일제차량,

3%대 정도가 우리나라산 차량(주로 현대)이다. 


이동중에 차창을 열고 다녔는데, 기온이 선선하다.

울란바토르의 위도보다는 거기가 1,350m 고지대이다 보니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공기는 탁하다. 매연에다, 거리에 흙먼지도 많고 하다 보니 매케하기도 하고, 특히 디젤엔진 차량이

지나갈 때면 차창을 잠시 닫아야 할 정도이다.

그리고, 울란바토르에는 3개소에 화력발전소가 있어서 그것들이 내뿜는 매연만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모든게 용서가 되었다. 왜냐하면 몽골이니까...


12시 40분 간등사에 도착했다. 


(本堂 앞, 수염 때문에 선배 같아보이는 후배와 함께)


(몽골 유일의 불교대학, 150명의 學僧이 있다)


(사리탑 같은데, 뭐라더라?)



(저 본당안에 있는 27m짜리 불상. 구 소련이 파손한 것을 네팔과 일본의 지원으로 복구했다.)


간등사에 도착하자 살짝 비가 뿌려진다. 이 비가 바로 뭔가를 암시하는 전조였음을 그 때는 어찌 알았겠는가.


간등사 관람을 끝내고 바로 점심식사를 위해 다시 이동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도 한국인 식당이 즐비하다.


(남도한정식 식당)


밑반찬부터 메인디쉬까지 상당히 수준 높다.

유럽여행때 제공되는 밥상에 비하면 거의 국빈대접 상이다.

채소류가 귀할텐데 채소 반찬이 제법 많아서 돟았다.

다만 고기의 나라인데도, 반찬으로 나오는 고기는 냉동육이었던 듯 살짝 질겼다.


오후 2시 20분 식사를 끝내고 '자이승'전승기념탑을 향해 출발했다.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계단을 한참 걸어올라가야 했다.





몽골의 독립전쟁 승리 기념 조형물로서 그 주역인 수흐바타르장군에 대한 존경과 함께 독립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걸로 봐서 800여년전의 그 영광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파노라마사진으로 보니 울란바토르는 제법 넓고 크다)


이어서 근처에 있는 이태준열사 기념공원.

웬 한국 이름인가 했더니 한국인(조선인)인데 이역만리 몽골땅에서 몽골인들에게

의술을 베푸는 한편 몽골의 독립전쟁을 적극 도운 사람으로 현지에서 그렇게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기념공원의 규모나 전시자료는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위에 보이는 조그만 기념관과 정자가 다이다. 하긴 옆에 있는 화장실도 공원 규모를 더했다)


거기서 첫날의 숙소인 선진그랜드호텔로 왔다.

한국 사람이 투자해서 운영하는 호텔인데, 크고 좋아 보였다.

객실마다 30년 된 골동품인 LG제 에어콘이 하나씩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을 갖게 했다.



숙소로 오기 좀전 이동중에 가이드에게 부탁, 13년전의 XX대 몽골인 동기생과 전화연락을 했는데, 감격적이게도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했다.

드디어 오후 6시, 호텔 로비에 그 친구가 나타났다.

반가움에 대충 인사하고 다짜고짜 시내로 나가자는 그를 진정시켜 호텔안 한국식당에서 한잔하기로 합의를 보고

식당 별실로 갔다.


친구가 한국말을 많이 잊어먹어서 의사소통이 잘안됐지만, 명함을 건네주고 이러저러 해서 대충 뜻이 통했는데,

현재 몽골정부의 모 장관 보좌관인데, 곧 퇴직한다던가 그렇단다.

그리고 자기 고향(헨티아이막)에서는 자기가 유명인사라 영향력이 있으니 내년에는 자기 고향동네로 초청한다고도 했다.

 

(음주 시작단계)


하여간 몽골맥주로 입가심 하고 칭기스보드카를 퍼마셨다.

맥주는 몽골사람들이 자랑하던데, 내 입맛에는 잘안맞았고, 보드카는 도수가 세서 처음에는 다소 거북했지만

좀 마시다 보니 적응이 된 건지 별 저항감이 안들었다.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고, 노래방까지 간 건 기억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은 쓰린데 머리는 말짱했다.

보드카가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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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1(월)


행사가 모두 끝난 뒤라 오늘은 뭘 어떻게 할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무엇보다 밤비행기 탈 때까지 짐을 어디다 맡기고 구경을 다닐까.. 그게 가장 큰 숙제였다.

가급적 늦게 체크아웃해서 바로 점심을 먹고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으나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

그래서 09:00에 일단 체크아웃하고 보자며 로비로 내려가 4박 동안의 방값 미화 160불을 지불하고 길을 나섰다.


일단 단골 밥집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려다 사장과 이야기 끝에 짐을 거기다 맡겨두고 부근의 거리부터 돌아다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차편으로 구경을 다니기로 했다.


그래서 맨먼저 찾아나선 곳이 바로 메콩강변 야시장이었다.

과거 한국정부에서 해마다 범람하는 메콩강에 둑을 쌓아주었는데, 그 둑에 야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사실 가다 보니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그전에는 밤이라서 방향을 옳게 못잡아 그리도 헤맸던가 보았다.

또 막상 가서 보니 낮이라 그랬겠지만 별 구경거리도 없더라만...

그리고 강 건너 태국과 통하는 교량이 안보이던데 그건 태국으로의 주민 이탈을 통제할 의도가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콩강변... 강 건너편은 태국이다.>


<야시장 자리...>


하여간 좀 걷다 보니 엄청 덥다.

옷이 다 젖어서 별수 없이 다시 밥집으로 돌아와서 주인에게 샤워 좀 할만한 곳이 없냐고 했더니 자기네 건물 4층에

종업원 아가씨들이 씻는 곳이 있으니 거기서 씻으라며 안내해주었다.

올라가서 보니 커다란 수조 하나만 있는데, 물을 퍼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며 대충 씻고 윗옷도 갈아입고 나니

좀 살만했다.

아랫층으로 내려와 좀 이른 점심을 먹고 주인이 호출한 운전기사와 가격을 흥정해서 전세 낸 현대차 스타렉스로

미화 50불에 시내 일원의 관광지와 거기서 40km 떨어진 불상공원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시내 관광 유적지부터 돌아보는데 너무 덥다.

그래서 웬만한 사진은 마음으로 찍고 그냥 가까운 곳에서 기념될 사진만 찍어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파탓 루앙.. 여기도 아누봉장군 동상이...>


<여기는 독립문... 미국이 비행장 건설하라고 준 시멘트를 여기다 갖다 부었단다. 우측은 천정 그림>


<호파깨우... 공사중이라 입장료 면제.. 우측은 나무뿌리 조각..>


그외에도 시내 관광코스는 몇군데 더 들렀던 것 같은데, 무더위로 대충 지나가서 기억이 가물가물...


이어서 서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불상공원으로 갔다.


<불상공원의 대표적인 건물, 호박처럼 생긴...>



<위 호박처럼 생긴 건물의 내부...>














<이상 불상공원 경관...>


한참동안 공원 내부를 돌아보고 다시 비양쨘 시내로 복귀했다.

그리고 좀 시간은 이르지만 밥집 주인이 차츰 분망해지는 모습을 보고 저녁식사를 빨리 달라 해서는 얼른 먹었다.

그런 뒤 공항으로 이동하려고 라오스에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뚝뚝이를 하나 좀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퇴근시간대라 그런지는 몰라도 한동안 주변에 뚝뚝이가 보이지 않는다.

밥집 주인이 이리저리 뛰며 애쓴 덕분에 겉이 깔끔한 뚝뚝이 하나를 대절했다.

그리고 미화 6불에 공항까지 가기로 하고 탔는데, 금방 후회가 밀려온다.

탄 곳이 개방되어 시끄러운 건 차치하고 주위 차량의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힌다.

게다가 신호등 때문에 자주 정차하니까 시원하지도 않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 20여분후에야 공항에 도착해서 기사에게 6불을 건네니 1불을 더 달란다.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야 대응을 하지... 그냥 1불 더주고 말았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둘러 보기도 하고, 더운 몸을 식히려 냉음료수도 사마시며 탑승 수속때까지 기다리는데 이만수감독 일행과 다시 조우했다.

같은 비행기편으로 귀국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는데도 거기서 다시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탑승, 다시 장시간 비행에 나섰는데, 갈 때보다 2시간 가량 시간이 덜 걸린다.

2시간의 시차가 있을 정도로 經度 차이가 있어서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기온을 감안, 파카를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두었다가 내리자 말자 파카를 꺼내 입고 나왔는데도

추웠다.


한참을 기다려 대전 가는 첫 리무진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라오스에서의 감동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줄곧 내가 라오스 아이들의 야구를 위해 힘이 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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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30(토)


열대지방치고는 꽤 선선한 아침공기를 대하며 일어나 씻고 7시 반쯤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주문하는데 실내가 어둡고

조명도 희미해서 老眼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아 주문서에 대충 체크햇더니 어제와 비슷한 음식이 나왔다.

숙박비에 포함된 조식인데도 정말 먹을만한 수준이었다.


4층 숙소로 올라가 양치질하고 나오다 각 방을 돌며 청소하는 종업원을 만났는데 '싸바이디'하며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생각해보니 경기장으로 나갈 때 매일 한번 방에다 팁으로 미화 1달러를 탁자 위에 두고 나왔는데 그게 효력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다.

다시 경기장으로 나가 야구유니폼 입은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팀 경기를 관전했다.


<이건 제1경기 장면...>


관전하다 여기서 야구하는 라오스 아이들은 평생 치킨을 못먹었다는 말이 기억 나서 후배와 의논 끝에 치킨을 사주기로

하고 미화 200불을 주최측 인사에게 건넸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경기 관전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한참 뒤 주최측 모 인사가 '라오스 치킨 맛 좀 보라'며

갖고 왔다.

좀 짭쪼름하지만 먹을만 했다.


또 다시 돌아온 점심시간...

뭘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으니 '유명한 도가니칼국수집'소개받고 경기장을 나섰는데 '허름하고,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가 있는 집'을 아무리 찾아 헤매도 그집이 그집...


한참을 찾다 포기하고 '나이 든 할머니가 문간을 지키고, 젊은 딸이 식사를 나르는' 허름한 국수전문점(Noodle Bar)에

들어가 메뉴판 사진을 보고 소고기 편육을 얹어주는 국수를 주문했다.

"노 팍치"하면서 팍치를 넣지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국물 속에는 어김없이 팍치향이 풍겼다.

"남듬 능 깨우(생수 1병)"하며 물 한병을 주문해서 나발 불며 호텔로 가서 신변정리후 간단히 午睡를 즐기다 경기장으로

갔다. 


<문제의 그 국수...>


경기장으로 오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은 지금이 1월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다음 경기는 외인구단 對 일본교민팀...

선발로 낙점 받고 천하의 이만수감독과 배터리를 이루어 피칭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이감독과 캐치볼 도중 갑자기 발목으로 날아오는 공을 미처 허리를 굽히지 못해 발목에 공을 맞았다.

아픈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주변까지 시커멓게 피멍이 들었다.


<공 맞은 당일...>


게다가 실제 경기에 들어가서는 제구를 잘못해 1회에 3점이나 내주고 이만수감독과 함께 자원 교체...

그날 일본과의 축구도 있는 날이라 기필코 이기자며 KBO출신의 라오스 청소년야구단 코치진들까지 함께 뛰었는데

일본 교민팀은 체구가 자그마하면서도 정말 기본기가 탄탄하다 싶도록 야구를 잘했다.

우리팀 선수들이 정말 잘친 타구도 빠른 발로 뛰어가 잡아내는 통에 점수가 잘안나다가 5회에 들어 겨우 6:4로

역전승했다.

하여간 억지로 이겼다.

모 코치가 '경기에서 지고, 매너에서도 졌다' 할 정도로...


그렇게 그날의 경기가 끝나고 라오스 청소년야구단장의 '센터' 방문 요청을 땀내 나는 유니폼을 핑계로 고사하고

호텔로 돌아와 씻은 뒤 후배와 함께 시내 나들이를 나섰다.


<숙소 부근 일대는 '여행자의 거리'로서 중심가에 속하는데도 배경은 많이 어둡다.>


라오스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겠다는 의욕으로 거리로 나서기는 했는데 막상 마음이 가는 데가 없다.

결국 어제의 그 한국밥집으로 들어가 메뉴를 고르다 소주 1병을 겻들여 오징어덮밥을 시켜 먹었다.

열대지방이라 그렇겠지만 건조 오징어로 요리를 해서 옳게 맛을 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왠지 아쉬운 음식맛에 여기서 유명한 도가니칼국수 이야기를 꺼냈더니 밥집 사장 왈, '여기는 전부 화학조미료로

맛을 낸다'며 '유명한 집이건 아니건 무조건 국물 맛이 비슷한데 그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밥집에서 좀 앉아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라오스 국가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점은

부패한 국가 지도층, 한심한 국민들... 이란 거다.

舊소련이 뭐라고 아직도 각 건물에는 라오스 국기와 舊소련기를 함께 게양하고 있다.

舊소련을 라오스의 정치적 기준으로 삼으면서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자동차 생산공장 하나 없는 나라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인구 수에 비해 자동차 대수가 너무 많다.

브랜드별로 따지자면 토요타 60%이상, 현대기아차 30%, 기타 10% 정도...

최고급 수준의 승용차들은 주로 당간부들 자가용이며,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정도의 부자들도 이곳 라오스에서는

명함도 못내밀 거란다.


식당과 상점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은 희미하고 내부는 어두컴컴하고,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은 맨발로 거리를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데...


그럼에도 행복만족도는 상위라는데, 이는 이 나라가 프랑스- 태국- 베트남의 식민지배에 이어 공산정권 통치로 인해

국민들은 자포자기하고 희망이라든가 국가부흥 등 진취적 욕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산정권이 그렇게 국민들을 통제해서 그렇겠지만...


그나마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지인들은 거의 없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나로서도 그것 하나 만큼은 칭찬하고 싶다.


<전주에 얽힌 각종 전선들까지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숙소로 돌아와 그냥 쉬려다 뭔가 아쉬워서 후배가 다시 밖으로 나가 근처 길거리의 닭다리와 이름 모를 안주를 사와서 

대전서부터 갖고 온 팩소주를 8개나 꺼내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TV를 보는데 우리나라의 YTN채널이 나와 뉴스를 들으며 많은 위안이 되었다.


한참 술을 마신 뒤 내일 경기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끝내자고 하고서는 화장실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 세숫비누로

얇은 언더웨어 하나를 세탁했다.

참, 화장실 변기에 딸린 수동식 비데가 좀 특이했다.


빨래후 담배 한대 피우려 호텔 발코니로 나왔더니 국립경기장에는 경기용 라이트가 환히 켜진 가운데 젊은 이들의

축제가 한창인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전날 밤에는 호텔 옆 국립예술문화회관 야외에서도 밤 늦게까지 쿵쾅거리며 젊은이들이 노는 걸 봤는데...

아마 공산 독재정권이 젊은 이들의 정치적 욕구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그런 식으로 배출구를 마련해준 게 아닐까 싶다.


<국립 예술문화회관..>




2016. 1. 31(일)


어느듯 행사 마지막날이 되었다.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갔더니 독일 단체관광객이 같은 호텔에 묵었던 탓에 거친 억양의 독일어가 식당 가득히 찬다.

15분여를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다 겨우 자리를 찾아 식사를 했다.


09:00경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보이지를 않다가 30여분이 지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참 있다 시작된 경기를 관전하면서 주최측 謨인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① 외국인의 라오스 학생 교육은 금지되어있다.

    이는 공산정권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 사상 주입을 우려한 탓으로 보여진다.

    비슷한 맥락으로 美 CIA에서 라오스 북부에 주로 분포한 몽族 반군을 지원해왔는데, 몇년전 謀선교사가 미국에서

    몽族의 개신교 신자를 만나고 온 것을 인지하고 그 선교사를 강제출국 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야구 교육은 예외로 인정해준단다.

② 라오스는 국민이 당간부 등 공직자와 서민계층으로 양분화/계급화되어 있고 서민들이 민주화에 대한 욕구나

    저항의식도 없이 무기력하게 무조건 복종하는 분위기가 고착되어 있단다.

    쉽게 말해 공무원들은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하부계층인 서민들에 대한 착취행위가 다반사이고, 서민들은 하루에

    얼마정도 수입을 올리면 남은 시간에 맥주나 차를 사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부존자원도 없는 나라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③ 정부도 국가 차원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노력 없이 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49개 종족으로 구성된

    나라임에도 국가통합을 위한 노력도 등한시하고 있어서 아직도 북부지방의 몽족은 반정부활동을 벌이고 있단다.

    수도 비양쨘은 라오스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북부지방의 루앙프라방까지 항공편으로는 1시간도 안걸리지만

    육로로는 10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도로망이 불비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국가통합이 옳게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④ 아이들이 단칸방에서 부모의 성생활을 목격하고 자라다 보니 어릴 때부터 성풍기가 문란하다고 한다.

    남녀 구분 없이 죄의식이나 부담감 같은 건 아예 없고, 남에게 노출되는 것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딸이 미혼모로 아기를 낳아 와도 부모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아기를 키워준단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돼서 예의 그 밥집으로 가서 냉면 한그릇 해치우고 숙소로 가서 한숨 자고 일어나 경기장으로 갔더니 마지막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둘러 몸을 풀고 등판, 2이닝을 던졌다.

이미 질 경기라 별로 기대도 안했고, 별 의미도 없어서 5회로 경기를 끝내고 바로 시상식을 시작했다.

라오스 청소년야구팀이 4승 1패인가 3승 2패인가 해서 우승...

그 아이들한테는 사뭇 감격적이었던가 보았다.

연3일 동안 5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적으로 무리도 갔고, 부상자도 몇명이나 되었는데 다들 밝은 얼굴이었다.

 



<시상식과 기념촬영 장면..>


시상식이 끝나고 주최측에서 '센터'에 식사하러 가자고 해서 가 봤더니 그 '센터'가 바로 야구훈련센터, 청소년야구단

멤버들이 야구훈련과 기숙을 하는 그런 시설이었다.

거기서 돼지불갈비와 찹쌀밥으로 식사하는데, 서울에서 오신 최연장자의 비밀실탄(소주)으로 몰래 반주를 겻들이니

나름 즐거웠다.

다만 찹쌀밥은 끈기가 강하고 좀 딱딱했다.


<센터에서의 회식..>


이윽고 밤이 깊어져 센터에서 나와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오늘이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뭔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라오스 비양쨘의 밤거리를 잠시라도 걸어보자는 생각에 거기서 가깝다는 메콩강변 야시장을 의중에 두고

길을 나섰는데 도대체 그놈의 메콩강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몇 블록을 돌아다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웬만한 곳은 내일 낮에 돌아보기로 하고...

 

<숙소 인근의 야경..>



2016. 1.28()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후배와 함께 콜택시편으로 대전 정부청사앞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가서 표를 끊고 대기하다

마치 중요한 무엇이라도 잊은 양 팩소주를 외치다 후배가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팩소주 20봉을 사갖고 왔다.

그럭저럭 시간이 되어 고속버스가 도착, 짐과 몸을 싣고 의자에 몸을 기대어 느긋하게 잠이라도 잘 요량이었으나

제법 원거리 여행이라 설레어서 그런지 잠은 쉬이 오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하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발권하고 짐 부치고, 식사하고 청사 안을 돌아다니다 웬만큼 시간이 돼서 라오스행 비행기가

있는 계류장으로 가는데, 파리의 샤를 드골공항처럼 전철같은 뭔가를 타고 한참을 가서야 도착했다.


<탑승 대기중, 동절기 복장.. 후배도 참 나이 많이 먹었네... ㅎㅎ>


그 건물 내에서 기다리며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를 보니 B-737기인데, 크기에서 A380이나 B-747기와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목적지인 비엔티엔은 라오스 首都이지만 공항이 작아 대형 항공기가 취항할 수가 없어서 소형기들만 취항하고 있단다.



<앞을 지나가는 A-380, 좀 멀리는 있지만 웬만큼 덩치 큰 점보기도 작게 모인다.>


오후 5시반쯤 되니 탑승수속을 시작, 우리도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야구가방을 맨 사람들이 있어서 한-라오스 친선야구대회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30여년만에 타는 B737기종이라 그런지 너무 협소해서 갑갑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예쁜 승무원들과 마주 보는 제일 앞자리라 상당한 위안이 되면서 좀 나았다.

저가항공이라 승무원들이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많이 생소하다.

오후 6시가 되자 드디어 움직이는 비행기...

그런데, 인천공항이 제아무리 넓다고는 하지만 30분 동안이나 유도로를 기어다니다 그제서야 이륙한다.

정말이지 그렇게 작은 비행기가 6시간동안 날아갈 수 있을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인천공항서부터 어두워져서 중국 상공을 날때는 완전히 깜깜해져서 육지의 도시들 야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그보다 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기내에서 돈주고 사 마셔야 하는 맥주...


6시간후, 드디어 라오스 비양쨘공항에 도착했다.

2시간의 시차가 있는 라오스라 밤 10시였다.

입고 갔던 동절기 복장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바꾸었지만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말자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가 후끈하다.

공항 청사 밖으로 나오니 이만수감독을 비롯, 라오스야구단장(제**)과 여러 코치들이 나와서 맞아주었다.

대절해온 버스에 타고 숙소로 가면서 비양쨘(비엔티엔) 시내를 구경했는데, 한 나라의 首都치고는 좀 허름했다.


하여간 현지에서 예약해준 호텔로 가서 짐을 풀었다.


<이 호텔의 4층이 숙소였다>


그리고는 씻고 자려는데 그 늦은 시각에 후배는 배가 고프단다.

그래서 인근의 자그마한 카페로 가서 피자를 시키고 라오스에서 가장 유명한 라오비거(맥주)를 사 마셨다.

20불을 지불하니 7불 정도가 남아서 억지로 맥주를 더 시켰다.

비행기 안에서 술을 제법 마신데다 카페에서 더 마셨으니 취기가 많이 오를 수 밖에...

써빙하는 아가씨에게 "응앰 라이(예쁘다, 많이)"라고 했더니 배시시 웃다가 옆의 동료에게 뭐라 하더니 둘이 함께

또 웃는다.



<피자... 배가 좀 고팠던 탓인지 제법 맛있었다.>


한참을 노닥거리다 호텔로 돌아와 자려는데, 술을 마신데다 열대지방인만큼 후덥지근하다.

에어콘을 키고 자는데 새벽녘에는 쌀쌀하다.

이른 아침과 한밤중에는 고맙게도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2016. 1.29(금)


일어나 씻고 7시에 식당으로 내려가 어렵게 주문해서 바게뜨빵과 죽, 후식으로 과일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이제 본행사가 열리는 국립경기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주최측에서 호텔을 행사장과 가까운 곳에 잡아주어 걸어서 5분만 가면 된다.


가는 길에 주위를 돌아보니 과연 열대의 나라임을 실감케 된다.

바나나며, 야자들이 흔하다.



경기장으로 걸어가다 보니 야구유니폼 입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모두 같은 행사 때문에 왔을 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드디어 '짜우 아누봉 국립경기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있는 동상은 태국과의 독립전쟁에서 한번 승리한 적 있는 아누봉장군이란다>


<이곳이 국립경기장 전경.. 우레탄 코팅도 많이 벗겨져 있고, 옆에 보조경기장이나 야구장 같은 건 없다>


주최측에서 경기장 본부석쪽에 행사 현수막을 3개 걸었다.



팀별로 줄을 섰다.

라오스 가기전 주최측에서 '당신은 외인구단에 편성되었습니다'고 해서 몇명 되는 줄 알았는데, 달랑 둘...


그리고 개막식...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애국가 제창을 할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도 국가간 행사라고...

駐라오스 한국대사와 서울대 사대학장님까지 행사에 참석해주어 격이 상당히 높아졌다.

게다가 일본 대표팀(현지 일본교민)도 있쟎은가?



개막식후 각 구단 소개시간이 있었는데, 나한테 외인구단 대표로 한마디하라기에 한다고 했는데...

팀소개를 할 것도 없고 해서 '나이 60이 넘어서도 좋아할 수 있는 운동종목이 야구라는 걸 라오스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왔노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놈의 기념촬영...

왜 사람들은 유명인과의 사진촬영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이만수감독이 피곤할 정도로 기념촬영 요청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안해하는 내게 후배는 '괜챦다'며 나를 잡아끌어 세우는 통에 나도 본의 아니게 이만수감독에게 폐를 많이 끼쳤다.



<복장을 보니 행사 첫날...>



<이건 둘째날, 내가 이만수감독과 배터리를 이루어 함께 1이닝을 뛰기전...>


<행사 3일차에도...>


이어서 개시된 경기...

백넷도 없고 투수마운드도 없이 축구장에 금만 긋고 경기를 하는데, 제1경기에서는 라오스 청소년들이 한국에서

급조해서 교회 신자팀에게 이겼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중고생들로서 잘 먹지를 못해 그런지 체격이 작지만 훈련을 잘받아서 조직력이나 경기력은

내가 생각한 수준 이상이었다.

언어소통상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길러낸 코칭스탭들의 노고가 짐작이 되었다.



제2경기가 시작되는 걸 보고 후배와 나는 점심을 해결하려고 밖으로 나와 근처 식당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메뉴를

살펴봤다.

뭘 사먹어야 후회가 없을지 한참을 망설이다 '이러다 결국에는 짜장면 사먹노라'면서 長考끝에 들어간 곳이 라오스에서는 제법 품격이 있는 식당인가 보다.

깔끔하면서도 고풍스런 분위기가 사람 마음을 끈다.

거기로 들어가 메뉴판을 봤는데, 잘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돼지갈비탕(Pork Rib만 알아보고...)을 주문해서 먹었다.

돼지갈비가 덜 고아져서 질기고 뜯어먹느라 애를 썼다.

그래서 고기는 대충 뜯다 건져내고 국물에 밥을 말아서 우리식으로 뚝딱 해치웠다.

그런데 무엇보다 고역인 건 그놈의 '팍치(향신료의 일종, 우리나라는 '고수'라던가?)...

후배는 그게 좋다는데, 나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식사 도중에 주방장인 듯한 젊은이가 다가와 '맛있냐'고 묻는 것 같아서 "쌥 라이(맛있다, 아주)"라고 대꾸해주었다.

식사후 호텔 숙소로 돌아와 양치질하고 잠시 낮잠 한숨 때리고 기다리다 다시 경기장으로 가서 제2경기 후반부를

좀 관전하다 몸풀기 시작...

일반적인 스트레칭은 대충 하고 어깨풀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전날 비행기에서부터 알차게(?) 마셔댄 술기운 탓에 몸이 많이 흔들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던지는 공 속도에 깜짝 놀랐단다.


드디어 라오스 청소년팀과 외인구단팀이 제3경기를 진행하는데, 먼저 경기에서 심판을 보던 사람이 등판했다.

그는 폐암 말기 환자로 2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단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밝았고, 심판 볼 때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그리고 그는 라오스 청소년들의 야구를 위해 4천만원 상당의 피칭머신을 快擲했고, 다시 5천만원 상당의 야구연습 장비를

기증하기로 약속한 상태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 감동적이다.

나는 나이 하나로 라오스 청소년들에게 감동을 주려 했는데, 괜히 부끄러워졌다.

하여간 그랬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은 투수로는 힘이 부치던지 무사 1루의 상황에서 나한테 마운드를 넘겼다.


던져 보니 라오스 청소년들은 직구에는 어느정도 적응을 했는데, 변화구에는 좀 약했다.

내가 던지는 동안 정타는 많지 않고 빗맞은 타구나 헛스윙이 많았다.

내가 술이 완전히 깬 상태도 아니라 4구도 많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당일치기 레슨으로 외인구단에 합류한 선수가

몇명 되다 보니 이길 수가 없었다.

물론 이겨야겠다는 욕심도 없었지만...

하여간 2이닝 던지고 내일 일본전을 위해 쉬라는 권유에 '不敢請이나 固所願'이라 마음 가볍게 내려왔다.

그 경기는 후배의 2타점 2루타가 아니면 영봉패할 뻔 했다.


경기후 선수단 인사시 걔네들중 가장 키가 큰 학생에게 내가 갖고 있으면서 한번도 안쓴 배팅장갑을 선물했다.

(그 친구는 그 이후 항상 뒷주머니에 장갑을 꽂고 다녔다.)

그리고 라오스 가면서 우리팀장비중 배트 1자루와 헬멧 하나를 갖고 갔는데, 얘네들이 탐나는지 돌아가며 만지고 있어서

돌려받기가 정말 미안했다.


1일차 행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씻은 뒤 저녁식사도 해결하고 거리구경도 할 요량으로 호텔을 나서서 길을 걷다 보니

'한국 밥집'이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갔다.

돼지국밥을 시켜서 먹다 소주 1병까지 겻들여 먹으니 19불이 나왔다.

소주값이 식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다시 거리로 나왔으나 피곤한 몸에 술까지 들어간 탓인지 다리까지 무거워져서 당초 계획했던 메콩강변 야시장 탐방은

포기하고 천천히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헬스조선]


나이가 들면 온몸 이곳저곳이 쑤시는 통증이나 눈이 침침해지는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대부분 노화 현상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신체 이상 증세를 모두 평범한

노화 현상이라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몸이 알려주는 질병의 신호까지 놓칠 수도 있다.

평범한 노화 현상과 질병의 신호를 구분하는 법에 대해 알아봤다.

 

정상 노화와 질병 신호


신체 각 기관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능이 떨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노화 현상을 겪는다. 미국국립보건원 노화연구소가 20세부터 90세까지의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정상 노화 과정을 관찰한 결과에서도 대부분 비슷한 수준의 신체 기능

저하가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운동 시 최대 산소 소비량은 10년을 주기로 남성은

평균 10%, 여성은 평균 7.5% 감소했다. 신장 기능이나 방광 용적도 줄어 요실금 등의

발병률도 증가하고, 근육량 감소도 두드러졌다. 시력과 청력도 꾸준히 감소했다.

노화 현상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단순 노화 현상 외에 특정 증상이

함께 동반되는 경우에는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

노화 현상과 비슷하지만, 질병의 신호일 수 있는증상들을 정리했다.

 

1. 침침한 눈

먼 곳을 보다 가까운 사물을 보려면 눈의 굴절력이 변해야 한다. 눈의 굴절력을 조절하는 것은 수정체다.

그런데 수정체가 점점 딱딱해지고 탄력이 떨어지면, 가까운 곳에 있는 글씨나 사물이 잘 안 보이게 된다.

이것이 대표적인 ‘노안’ 현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가까운 사물이 안 보이는 것에서 눈앞에 이물질이 보이거나

암점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다른 안과질환일 수 있으니 병원을 찾아 진단받아야 한다.


1. 비문증

단순히 침침해지는 정도를 넘어 눈앞에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면 비문증을 의심해야 한다.

비문증은 눈앞에 작은 이물질이 보이면서 시야를 가리는 눈질환이다. 작은 벌레나 실, 선 등이 나타나

시선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물질의 개수가 늘어나거나 통증이 생기면 망막이 찢어진 ‘망막박리’나 구멍이 생긴  ‘망막 열공’

증상일 수 있으니 즉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망막박리로 인해 염증이 생긴 상태에서는 통증과 함께 출혈ㆍ시력저하가 동반된다.


2. 백내장ㆍ녹내장


[헬스조선]


백내장은 눈 안의 수정체가 혼탁하게 변하는 것이고, 녹내장은 안압 상승으로 시신경에 손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백내장은 수정체 혼탁이 심해지면서 시야에 안개가 낀 것 같거나 눈이 부시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증상이 생긴다.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넣는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방치하면 녹내장으로 발전해 실명에 이를 수 있다.

녹내장은 안압이 올라가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각막과 수정체 사이를 채우는 ‘방수’라 는

액체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서 발생한다. 눈으로 작업하는 중 시야를 가리는 암점을 발견 하거나

빛이 번지고 눈의 통증과 함께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동반되면 녹내장을 의심해야 한다.


3. 황반변성


망막의 중심부이면서, 물체의 상이 맺히는 황반에 변성이 생긴 질환이다.

시력저하와 시야의 중심 부위가 구부러져 보이는 변시증이 나타난다. 바둑판처럼 생긴 종이 한가운데

점을 찍고 바라 볼 때, 바둑판무늬가 구부러져 보이거나 찌그러져 보이면 황반의 이상을 의심해야 한다.

황반변성은 방치하면 실명에 이를 정도의 심각한 시력저하가 나타나므로,

조기에 진단을 받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소화불량


노년층에 소화불량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위장 기능의 저하 때문이다. 위에서 나오는 소화액인

위산의 분비가 줄면서 음식이 위장에 오래 머무르게 되고, 소장과 대장 운동 기능이 저하돼 배변 활동도

원활하지 못하다. 하지만 약을 먹고 식사를 조절해도 소화불량이 사라지지 않거나 식사 때마다

반복된다면 다른 원인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1. 담석증


담석증은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간 밑에 있는 작은 주머니 형태의 담낭(쓸개)에

콜레스테롤 등이 돌처럼 뭉쳐 쌓이면서 발생한다. 담석증이 있으면 과식했을때 명치 부위가 아파 단순

소화불량과 헷갈리기 쉽다. 배의 오른쪽 윗부분이 5시간 이상 아프고 더부룩한 느낌과 함께 열이 나면

담석증을 의심해야 한다. 황달이 나타나거나 회색 대변을 보는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2. 췌장암


오랫동안 흡연을 한 사람이 원인 모를 소화불량을 계속 겪는다면 췌장암 신호일 수 있다.

흡연은 췌장암의 가장 큰 위험요인 중 하나이며, 췌장암 환자의 대부분이 가슴 근처가 답답하고 속이 좋지

않거나 식욕이 없는 등 소화불량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췌장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면 황달이 나타나기도 한다.


3. 위암·대장암


한국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위암이나 대장암도 소화불량을 유발할 수 있다. 소화불량과 함께 구토나

식사 시 조기 포만감,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곤란 등이 동반되면 위암을 의심해야 한다.

체중감소나 식욕부진, 전신피로감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병이 더 진행되면, 상복부에서 덩어리가

만져지기도 한다. 반면 혈변을 보거나 복부의 통증이 있고, 빈혈 등이 생기면 대장암을 의심해야 한다.


[헬스조선]


3. 만성통증


노년층에서는 몸 이곳저곳에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뼈나 관절, 근육, 신경이 노화하는데다

운동을 안 하거나 바르지 못한 자세로 앉는 등의 생활습관이 더해지면서 관절이나 연골 등에

무리를 줘 손상되기 때문이다. 통증의 대부분은 특별한 원인이 없는 퇴행성관절염이다.

하지만 통증이 단순 노화 현상이 아니라, 염증이 생긴 류마티스관절염이나 뇌신경 세포가

소실되는 파킨슨병의 전조 증상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1. 류마티스 관절염


초기에는 관절을 싸고 있는 활막에 염증이 발생하지만, 점차 주위 연골과 뼈로 염증이 퍼져 관절이

파괴와 변형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단순 통증과 함께 피로감이나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나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있는 경우 관절이 뻣뻣해지는 ‘조조강직’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조조강직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진다. 완치는 어려운 질환이지만, 약물로 진행을 막는 등의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폐나 심장, 신장 등으로 염증이 퍼져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2. 파킨슨병


뇌에 분포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세포가 소실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떨림과 경직,

자세 불안정성 등이지만, 초기에 통증과 우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만성진행성질환으로

환자의 증상이 서서히 악화되는데, 보통 약물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켜 최대한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가 시행된다.

 

4. 체중감소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되면, 근육을 구성하는 근섬유 기능이 약해지고 세포 크기가 작아지면서

근육량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체중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한달 만에 3kg 이상

체중이 줄고, 음식을 제대로 섭취해도 체중이 늘지 않는다면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


1. 갑상선기능항진증


갑상선호르몬은 체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갑상선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활발해지면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해도 지방과 근육이 줄어들어 체중이 감소한다.

식욕이 왕성해지고, 손발떨림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2. 염증성폐질환


[헬스조선]


체중감소와 함께 흉통ㆍ호흡곤란이 나타나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ㆍ결핵 등을 의심 할 수 있다.

체내 염증이 생기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염증에 대항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음식을 평소처럼 섭취해도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아 체중이 쉽게 줄어든다.

또한 염증 물질 자체가 세포 속 에너지 공급원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저하시켜 기력이 떨어진다.


3. 심부전


심부전이 생기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쉽게 지치는 증상이 생긴다. 이 때문에 운동량이 점차 줄어

근육이 작아지고 체중도 감소하게 된다.


4. 당뇨병


소변 양이 늘고, 자주 허기지면서 체중이 급격히 줄면 당뇨병이거나 약물 등으로 혈당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혈당이 높아지면 당 성분이 소변으로 과도하게 빠져나간다.

음식을 통해 섭취한 당은 우리 몸속 세포로 이동해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당이 부족해지면

몸속 체지방이나 단백질 등을 에너지원으로 대신 사용해 살이 빠진다.


5. 건망증


나이가 들면서 가장 많이 생기는 증상 중 하나가 건망증이다. 물건을 들고 있으면서도 어디 뒀는지

찾는다거나 방금 전까지 기억하고 있던 걸 갑자기 잊어버리는 증상이다. 하지만 건망증이 심해져

무언가를 잊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치매 등 인지장애의 조기 증상일 수 있다.


1. 알츠하이머치매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뇌질환이다. 서서히 발생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 저하가

점점 진행되는 병이다. 알츠하이머치매인 경우에는 단순히 기억력이 감퇴하는 증상뿐만 아니라

언어능력 저하가 동반된다. 대화 중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등의 증상이다. 보행장애가 나타나거나

몸이 경직되는 등의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알츠하이머치매는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증상이 의심될 때 즉시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2. 혈관성치매


뇌혈관질환을 겪은 후에 건망증이 심해졌다면, 혈관성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혈관성치매는 기억력

감퇴와 함께 한쪽 감각이 마비되는 증상과 시야장애 등이 동반된다. 서서히 진행하는 알츠하이머치매와 달리

혈관성치매는 증상의 악화 속도가 빠르다. 보통 뇌혈관질환의 재발이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고혈압이나 당뇨, 비만, 흡연 등 뇌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을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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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패스트푸드와 육식 위주의 식습관에 길들여진

요즘이라지만 밥은 꼭 먹어야 기운이 난다.

 

밥솥으로 밥을 하고 나면 종종 밥솥에 붙어 아까운 밥알들로 누룽지나 숭늉까지 해먹는 경우도

많다. 너무 흔한 만큼 소중한 '밥'과 관련된 궁금증을 알아봤다.

 

◇쌀밥 먹으면 지구력이 좋아져

창자가 길면 지구력이 강하다고 한다. 쌀과 야채가 주식인 한국 사람의 소장은 고기와 밀가루를

먹는 서양 사람보다 평균 80cm가 더 길다.

음식을 오래 씹으면 침이 많이 나와 몸 곳곳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영양이 골고루 퍼지게 돕는다.

침에는 소화를 돕는 아밀리아제와 상처를 낫게 하고 암을 예방하며 치아를 단단하게 하는 각종

효소도 들어있다. 침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을 50% 이상 소화시키고 곡물의 경우는 70% 이상

소화시킨다.

오래 씹을수록 많이 분비되는 침은 부작용 없는 자연소화제다. 씹는 운동은 머리의 회전을 도와

주고 치아뿐 아니라 안면 운동 효과도 있다

◇탄 밥으로 만든 숭늉, 건강에 좋을까?



누룽지는 밥을 지을 때 밥솥 바닥의 수분이 밥알에 스며들거나 증발할 때 온도가 220~250도까

지 올라가면서 3~4분이 지나면 누렇게 변한다.

누룽지의 고소한 맛은 녹말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포도당과 덱스트린이라는 물질이 생겨나 만들

어진다. 숭늉은 밥솥 바닥의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든 것으로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짠맛이 많은 한국 음식을 먹고 나면 산성이 높아지는데, 포도당이 녹아있는 누룽지와 숭늉은 산

성을 알칼리성으로 중화시켜주기 때문에 소화를 돕고 소금기 가득한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패스트푸드와 육식 위주의 식습관에 길들여진

요즘이라지만 밥은 꼭 먹어야 기운이 난다.

 

밥솥으로 밥을 하고 나면 종종 밥솥에 붙어 아까운 밥알들로 누룽지나 숭늉까지 해먹는 경우도

많다. 너무 흔한 만큼 소중한 '밥'과 관련된 궁금증을 알아봤다.

 

◇쌀밥 먹으면 지구력이 좋아져

창자가 길면 지구력이 강하다고 한다. 쌀과 야채가 주식인 한국 사람의 소장은 고기와 밀가루를

먹는 서양 사람보다 평균 80cm가 더 길다.

음식을 오래 씹으면 침이 많이 나와 몸 곳곳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영양이 골고루 퍼지게 돕는다.

침에는 소화를 돕는 아밀리아제와 상처를 낫게 하고 암을 예방하며 치아를 단단하게 하는 각종

효소도 들어있다. 침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을 50% 이상 소화시키고 곡물의 경우는 70% 이상

소화시킨다.

오래 씹을수록 많이 분비되는 침은 부작용 없는 자연소화제다. 씹는 운동은 머리의 회전을 도와

주고 치아뿐 아니라 안면 운동 효과도 있다

◇탄 밥으로 만든 숭늉, 건강에 좋을까?



누룽지는 밥을 지을 때 밥솥 바닥의 수분이 밥알에 스며들거나 증발할 때 온도가 220~250도까

지 올라가면서 3~4분이 지나면 누렇게 변한다.

누룽지의 고소한 맛은 녹말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포도당과 덱스트린이라는 물질이 생겨나 만들

어진다. 숭늉은 밥솥 바닥의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만든 것으로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짠맛이 많은 한국 음식을 먹고 나면 산성이 높아지는데, 포도당이 녹아있는 누룽지와 숭늉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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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돋는 봄을 맞아 농촌 곳곳에서 나물을 채취하는 주민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특히 매년 이때 주말이면 산골마다 도시지역 주민들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산나물 채취를 위해 삼삼오오 산에 오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해마다 독초와 산나물을 착각, 이들 부부와 같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해 4월 초에도 충남 보령시 A(68)씨 집에 모인 일가족 14명이 자리공을 인삼으로 알고 먹었다가 복통과 구토 증상을 겪었다.

같은 해 3월 말에는 경북 영덕에서 전통시장에서 사 온 산나물을 데쳐 먹은 5명이 혀와 몸이 마비되고 구토를 하는 등의 증상을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들이 먹은 산나물 속에는 역시 독초인 초오가 섞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5월 초에도 강원도 태백시 주민 6명이 당귀로 알고 산에서 채취해 온 나물을 먹고 역시 복통과 구토 등을 호소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 이런 식물이 식용으로 착각하기 쉬운 '독초'

[국립수목원 제공=연합뉴스]


[국립수목원 제공=연합뉴스]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식물 중 하나가 식용인 곰취와 독초인 동의나물이다.

대표적인 산나물인 곰취는 잎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잎자루에는 두 줄의 적갈색 세로줄 무늬가 있으며, 특유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동의나물은 곰취보다 잎이 두껍고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에 적갈색 세로줄 무늬가 없다. 특유의 냄새도 없다.

식용인 머위와 독초인 털머위도 많이 착각한다.

머위 잎은 호박잎과 유사해 잎이 부드럽고 잔털이 있다. 반면 남부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털머위는 잎이 늘 푸르고 두꺼우며 잎자루가 붉은색을 띤다.

[국립수목원 제공=연합뉴스]

참당귀(식용)와 개구릿대(독초), 산마늘(식용)과 은방울꽃(독초)도 많이 헷갈리는 식물이다.

자주색 공 모양 꽃을 피우는 참당귀는 향이 짙고 잎은 여러 개로 갈라지며, 작은 입은 서로 연결되어 떨어지지 않지만, 개구릿대는 참당귀와 달리 갈라진 잎이 서로 떨어져 있고 꽃은 흰색이다.

또 산마늘은 부추 향이 나지만 부추보다 잎이 넓고 두 장씩 나오며 부드럽다. 그러나 은방울꽃은 잎이 산마늘과 유사하나 두껍고 뻣뻣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우산나물과 삿갓나물도 착각하기 쉽다.

식용인 우산나물은 펼친 우산 살처럼 한 곳에서 여러 개의 잎이 돌려나는 특징이 있고 잎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가장자리에도 톱니가 있다. 독초인 삿갓나물은 잎에 톱니가 없다.

◇ "산나물, 지식 없으면 함부로 채취하지 마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봄나물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경험이 있는 사람과 동행하고,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함부로 채취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도시 하천변이나 도로 주변의 봄나물은 중금속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채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식용 봄나물이라도 독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달래와 돌나물, 씀바귀, 참나물, 취나물, 더덕 등은 조리 전에 물에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3회 이상 깨끗이 씻도록 했다.

두릅과 냉이, 고사리, 다래순, 원추리순 등은 꼭 데쳐서 먹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특히 원추리는 성장할수록 콜히친이라는 독성분이 강해지므로 반드시 어린 순만 섭취하고, 끓는 물에 충분히 데친 후 찬물에 2시간 이상 담근 뒤 조리할 것을 주문했다.

국립수목원은 "산나물이나 약초를 허가 없이 채취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채취 전 산주의 동의를 꼭 얻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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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뜨물활용법

1. 각종 냄새 제거
밀폐용기의 배어 있는 냄새를 없애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김치를 담아 둔 용기나 생선비린내가 나는 그릇이나 용기에 쌀뜨물을 붓고 이틀정도두면 냄새가 싹 가신다. 그리고 도마에 밴 불쾌한 냄새도 쌀뜨물에 30분가량 담갔다가 스펀지로 구석구석 문지르고 물로 닦아낸다.

2. 기름때 제거 (천연세제)
기름기가 묻어 있는 그릇은 쌀뜨물에 깨끗이 닦이며 냄새도 말끔히 제거된다.쌀뜨물을 큰그릇에 받아 둔다. 그리고 난후 설거지 할 때 쌀뜨물에 그릇을 잠시 담가 두면 기름기가 제거되고 음식 찌꺼기등도 세제없이 깨끗이 닦아진다. (야채삶은 물이나 먹다 남은 찻물도 역시 쌀뜨물과 똑같은 효과, 주방용 세제대신 활용하면 기름때가 깨끗이 제거된다)

3. 화분의 영양제
화분에 부어 영양을 보충해 주면 좋다. 화초나 채소에 부어 주어 물과 거름의 이중효과를 누릴수 있다.

4.유리창 청소할 때
쌀뜨물에 함유된 유분은 광택을 내는 왁스효과와 때를 부착시켜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먼지나 유분으로 뿌옇게 얼룩진 거울은
분무기에 넣은 쌀뜨물을 분사한후 마른걸레로 닦아내면 깨끗해지고 광택이 난다. 아님 오랜 지든때의 유리창은 하룻밤 뿌려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닦으면 유리가 반짝반짝 빛난다.

5.나무바닥이나 목재가구 청소
나무바닥이나 목재가구 역시 쌀뜨물을 분무기에 넣어 뿌린후 걸레로 닦으면 된다. 가구 표면의 가벼운 때도 함께 떨어지는 것은 물론 광택효과도 탁월하다. 주의할점은 코팅되어 있지 않은 가구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나 걸레에 묻혀 마루를 닦으면 왁스칠을 한것처럼 윤이 난다.

6.미용에 탁월한 효과
세안시 쌀뜨물속에 녹아 있는 전분이 뛰어난 수분흡수력과 미백효능을 지니고 있어 규칙적으로 쌀뜨물로 세안해주면 여드름이나 뾰루지 등의 치료에 아주 좋고 피부를 탄력있고 하얗게 해주는 미백효과도 뛰어나다. 처음것은 버리고 두 번째 씻은 쌀뜨물에 더운물을 약간 섞어 피부온도와 함께 만든다. 그 다음에 씻어내는데 땀구멍이 적당하게 열려져 더러운 물질을 제거해 준다.

-쌀뜨물을 팩으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쌀뜨물을 받아 2-3시간 두면 앙금이 가라앉는다. 이앙금에 레몬즙과 밀가루를 조금넣어 팩을 하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 비누를 사용하기전 옛날 궁중이나 민간에서는 쌀뜨물세안이 가장 흔한 미용법이었다고 한다.

7.빨래 삶는 효과
빨래는 삶으면 흰옷을 더 하얗게 해준다. 처음것은 화초밭 같은 곳에 버리고 두 번째 나오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8.음식의 맛 조절
비타민 B1,B2,지질,전분질이 녹아 있어 마지막 쌀뜨물을 찌개 국물로 활용하면 영양가도 높일수 있다.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일때는 맹물보다. 쌀뜨물을 사용하면 찌개의 윗물이 생기지 않고 국물맛이 한결 구수해지고 감칫말이 더해진다.

9.시래기국을 끓여도 맛이 일품
우엉이나 죽순등을 삶을 때 사용하면 쌀뜨물속에 있는 전분입자가 표면을 감싸줘 산화를 방지 하기 때문에 하얗게 삶을수 있고 떫은 맛도 많이 제거된다.

10.감자나 토란을 조리할 때
쌀뜨물에 감자나 토란을 삶으면 특유의 아린맛이 거의 사라진다.

11.자반고등어 조리할 때
너무 짜서 먹지 못하는 자반고등어는 쌀뜨물에 30분정도 담가두면 짜지 않고 맛도 좋아진다.

12.생선비린내 없애거나 살을 연하게 할 때
비린내 나는 말린 생선은 쌀뜨물에 담가두면 냄새가 없어지고 살이 연해져 맛이 한결 좋아진다. 말린 고기를 불릴 때 고기의 영향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수 있다. 단, 음식이나 세안에 사용하는 쌀뜨물은 두세번 정도 헹궈내고 받은 쌀뜨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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