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간절한 것이 두가지 생겼다.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고 싶은 것, 또 하나는 어릴 때 늘상 보던, 밤하늘의 은하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눈 감기전에는 이룰 수 없을 것이라 더이상 얘기를 할 수 없으니 얘기를 접는다.


하여간 어느날 갑자기 은하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같은 동네 사는 후배에게 "너, 별구경하러

몽골 한번 안가볼래?"하고 뜬금없이 물었는데, "그러죠"라는 한여름 냉풍기 같은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랴부랴 여행사 택해서 짧은 패키지 여행을 준비했다.

그래서 글 제목이 메뚜기여행이다.

예약금 넣고, 비자발급 신청도 하고... 최종적으로 잔금까지 보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사실 좀 들뜨기도 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몽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몽골어 회화도 좀 곁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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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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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56만 4,116km²

인구         3,051,900명(2017)

수도         울란바토르

공용어      몽골어, 러시아어(상용어)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할트마긴 바트톨가

                * 임기 2017년 7월 10일 ~

총리         자르갈톨라긴 에르데네바트 

                * 임기 2016년 7월 7일 ~

종족구성   몽골인 96%, 카자흐인 4%

종교         불교 53%, 무교 38.6%, 이슬람교 3%

GDP        111억 6400만$(2016, 명목상)

                * 1인당 GDP(명목) : 3,704$(2016)

통화        투그륵(төгрөг)

국가        몽골국(Монгол Улс, 몽골올스)

            * 몽골어 표기: Монгол Улсын төрийн дуула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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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연합(UN) 가입 : 1961년



 지리

내륙국으로 바다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띈다. 

또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지형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 

서쪽 끝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과의 접경지역에 매우 높은 알타이 산맥이 존재하며, 

중부에는 비교적 낮은 항가이 산맥이 존재한다. 

그보다 더 동쪽엔 항가이 산맥보다 낮은 헹티 산맥이 있다. 

남동부는 낮고 평평하지만 거의 전 지역이 사막으로 덮여 있는데 그 유명한 고비사막이다. 

사막 외곽엔 초원이 있으며 북부 지역엔 숲도 있다.


큰 호수도 몇개 존재하는데 서북부 '옵스'호(Увс нуур)는 염호(鹽湖)로 제주도 2배 크기 정도이며 

몽골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옵스'호보다 약간 작은 '훕스굴'호(Хөвсгөл нуур)도 유명하다.



 기후

기후는 몽골 전지역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건조하고 연교차가 극단적으로 크며 겨울이 추운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연교차가 커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건조해진다. 

몽골 서부 '올랑검'은 1월(-32.1℃)과 7월(18.9℃) 평균 기온의 차이가 51℃에 이르며, 

동부 '처이발상'도 1월(-20.5℃)과 7월(19.8℃) 기온 차이가 40℃에 달한다. 

강수량은 다르항(357mm)이나 므릉(207mm) 등 북부 지방이 사잉샹드(111mm)나 

달랑자드가드(126mm) 등 남부 지방보다는 많은 편이다. 

열대야는 없지만 일교차를 고려할 경우 여름철 낮 최고기온은 한국과 별 차이 없거나 더 더울 수도 있다.


겨울엔 '조드'(зуд/Zud)라는 혹한이 찾아와 큰 피해를 준다. 

조드가 일어날 때마다 가축이 죽는데, 1944년 700만 마리의 가축이 죽는 극심한 혹한이 있었고, 

최근 2010년에도 서북부 옵스 지역에서 50일 동안이나 기온이 -48℃ 밑으로 떨어지는 혹한으로 

전국 가축의 17%인 2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역대 최저 기온은 앞에 말한 옵스 지역에서 기록된 -58℃. 이런 혹한과 눈보라 때문에 

인명피해도 발생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인해 "전사는 화살 한발에 죽고 富者는 

조드(зуд) 한번에 망한다." 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首都인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27도라 한다. 이쯤 되면 그냥 대놓고 시베리아 수준인 걸 넘어서 

이르쿠츠크나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남시베리아보다도 추운 수준이다. 

실제로 나라 자체가 시베리아 남쪽에 바로 붙어 있고 수도도 시베리아에서 가깝다.


덤으로 몽골이 우리나라보다 북쪽에 있어 굉장히 북쪽에 있는 나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프랑스 파리와 위도가 비슷하다. 

덤으로 우리나라 또한 유럽기준으로는 꽤나 남쪽이다. 

추운 걸로 유명한 철원도 따뜻하고 살기 좋다는 남부 이탈리아 정도이고, 남한 전체를 따진다면 

대체로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기온차는 울란바토르와 파리가 비슷한 위도인지 인식하기 힘들 정도다. 

기온의 경우 위도뿐만이 아니라 격해도나 해류, 해발고도 등 다양한 기후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온차가 위도와 상관없는 경우는 많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빼면 거의 극지방까지 올라가도 

이런 날씨는 보기 힘들다. 

참고로 스웨덴 키루나(북위 67도)의 겨울 평균 기온도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사실 몽골의 추운 기후의 원인을 찾아보면 '대륙 한가운데'라는 위치 외에도 

해발고도가 높은 편인 것도 원인.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의 고지대이다.


'훕스굴'주 '터성쳉겔'(Тосонцэнгэл)이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압이 기록되기도 했다. 

1,085.6hPa.



 지질/생물

고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땅만 파면 공룡 화석이 나오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프로토케라톱스나 오비랍토르, 벨로키랍토르, 피나코사우루스, 사이카니아, 

테리지노사우루스, 타보사우루스, 사우롤로푸스, 갈리미무스 등 인지도가 꽤 높은 공룡들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견되었다.


게다가 몽골의 몇몇 지층은 백악기 때부터 사막이어서 간단한 손도구만으로도 지층이 쉽게 제거된다. 

대신 그 유명한 타르보사우루스가 발굴된 백악기 지층인 네메그트 층은 예외적으로 

사막 지층이 아니라 범람원 지층이었다.


미국에 전시된 타르보사우루스의 상당히 완벽한 형체의 뼈도 몽골에서 1924년에 헐값에 구입해 가져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몽골에선 이런 헐값으로 가져오려면 어림도 없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비롯한 고생물학자들이 몽골에서 발굴할 때 보면 정부기관 인사들 및 몽골 학자들도 

반드시 가서 같이 연구하고 감시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무단으로 해외로 가져가려던 해외 학자들이 걸려 추방당한 뒤로 이렇게 감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룡 이외에도 히아에노돈이나 엔텔로돈, 곰포테리움, 파라케라테리움 같은 흐산다골 지층의 

신생대 포유류의 화석도 꽤 유명한 편이다. 


몽골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대륙에 중심으로 사는 종이며 마못이나 토끼 등 설치류가 많다. 

초원에는 몽골가젤이나 사이가영양 등 우제류가 있으며 몽골야생마가 서식한다. 

털이 길고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도 많이 사는데, 중동의 단봉낙타가 야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이 키우는 개체만 남은 것과 달리 쌍봉낙타는 몽골에서 야생에도 많다. 

맹수로는 주로 늑대가 많은데 약 1만 마리 수준이다. 

그 밖에 눈표범이나 불곰도 존재한다.



 역사

몽골은 몽골제국의 역사를 제외하면 부족들간 대립의 역사였다.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후 몽골판 백백교 교주 '운게른'의 사이비종교급 통치를 겪고 '담딘 수흐바타르'의 지도하에 

독립한 후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지배가 한동안 계속된 뒤 자체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사회

휴대전화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초원과 사막이 중심인 국토 지형과 소수지만 존재하는 유목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닐 듯. 

대신 공업기술과 생산력이 부족해서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몽골에서 몽골어는 키릴문자로 표기하지만 불편하다보니 핸드폰으로 문자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할 때는 

그냥 로마자로 쓴다. 

유목민의 경우 발전기나 무전기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유목민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기 때문에 말을 잘 모는 편이다. 

어린이들도 등자나 안장없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편. 

특히 차량이랑 오토바이가 비싸다 보니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시아가 몇 나라 안되긴 하지만 하여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높은 살인률을 보이는 나라다. 

10만명당 7.5건으로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다. 옆 나라 중국은 0.8건.



 언어

몽골어가 공용어이다. 

하지만 서쪽의 카자흐족들은 카자흐어만 사용하며 몽골어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다. 

몽골어가 키릴문자를 쓰고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국가가 된 탓도 크다. 

그러다 소련 붕괴 이후엔 영어,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도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07년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러시아어도 다시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었다.



◇ 인구

몽골의 고민은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남한 면적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인구가 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땅은 넓은데 인구가 너무 적은 경우로 언급된다. 

300만 인구조차 그나마 이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2009년의 몽골의 인구 밀도를 남한에 그대로 적용하면 남한 인구가 16~17만 명밖에 되지 않는 경우와 같다. 

참고로 몽골의 가축의 수는 도합 7천 5백만 마리가 넘는다. 

그리고 몽골내에서 사는 몽골인보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서 사는 몽골인이 훨씬 많다. 

내몽골에 사는 몽골인은 500만명을 넘는 정도.


그래도 출산율이 2명대 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보니 인구 증가율 자체는 상당한 편이고 

고령화 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게 위안. 

2015년 1월에 300만 명을 드디어 돌파했다. 


그린란드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 및 자치령이다. 

독립국 중에서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1제곱킬로미터당 인구가 무려 2명으로, 세계적으로 텅 빈 나라로 주로 언급되는 호주보다도 낮은 인구밀도를 자랑한다. 

750년 전에는 되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사실 몽골제국 시절에도 인구가 하도 적어서 원나라 시절 몽골인은 고작 1.5%였다.


하지만 한랭건조한 기후, 초원과 사막이 대부분이고 큰 하천이 없어 농경에 불리한 지리적 조건 탓에 

광활한 방목지가 필요한 목축업이 주력산업이므로 인구가 증가할수록 오히려 인구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몽골족이 주류지만 서쪽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몽골 서부 '바잉을기 아이막'의 경우 주민의 90% 이상이 카자흐족이다.  

그 외에도 투바인, 에벤키인, 러시아인, 중국인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굉장히 심각하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인구가 전 국민의 3분의 1인 100여만명이다. 

최대도시 울란바토르는 인구가 백만 명이 넘는데 제2~3도시인 다르항이나 에르데네트의 인구는 

고작 10만명 내외. 나머지 지방도시들도 1, 2만 명이면 큰 도시에 속한다. 

그리고 몽골의 모든 기간시설이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백만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여러 모로 굉장히 버겁다.



 교육

소련이 존재하던 시기에 몽골에서는 소련의 막대한 지원에 따라 국토 전역에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몽골 특유의 유목생활로 인해 취학률은 70%를 넘지 못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초등학교에 

기숙사를 설치해서 학생들을 취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등교육은 거점(각 주에 2~4개교)에 설치하여 기숙학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통해 입학생을 받는다. 

몽골 내에서는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상당한 고학력자로 인정받기 때문에 지방 관청이나 기업체에 취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몽골의 대학들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만 있으며, 전부 국립대학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소재한 대학에는 1942년 소련 당국에 의해 설립된 국립종합대학(National University)이 있다. 

의학부, 수리과학부, 인문학부, 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경제학부, 외무학부, 경영학부, 법학부, 사회학부, 

언론정보학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외국어문학부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의학부 부설 병원이 설치되어 있다. 


1925년 몽골 공산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중앙사범대학(Central Education College)도 있다. 

이외에도 90년대 초반 몽골 교육부의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국립과학기술대학(Nation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1950년에 별도로 설립된 

과학기술대학이 있었지만,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의 이공학부를 떼어 내어 

기존의 과학기술대학과 통폐합하였다. 


그 밖에도 국립농경대학(National Agriculture College), 국립보건대학(Health Science University) 등이 있다. 

이 국립보건대학은 국립종합대학 내의 의학부와는 별개의 학교로 기존의 한 곳이던 의료 인력 양성 기관을 

다양화하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국립종합대학의 의학부는 말 그대로 의사만을 양성하지만, 이 곳에서는 간호인력과 의료행정 인력도 함께 양성한다. 


이들 대학의 입시에서 특이한 점은 중앙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격인 국립종합대학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국가 공무원으로의 취직이 보장된 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그 나라의 首位대학의 입시 성적을 

압도하는 현상은 아프카니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케냐, 미얀마 등과 같이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으로,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고 사회적으로 직업이 다양하지 않은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그 학력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는 상황의 하나다. 

동아시아권에 대학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양산되는 

고학력 실업자(룸펜)와 마찬가지. 

이러한 현상에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도 일정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몽골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교사가 수십년간 1위를 독점해 오고 있다.


그래서 몽골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중등학교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사범대학에 지원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통

몽골은 면적이 매우 넓은 나라지만 인구밀도는 세계 최하위권인 탓에 교통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항공교통이 발달해 있다. 

전국에 46개의 공항이 있으며 수도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외국인 요금과 몽골인 요금이 달라서 한국인의 경우 절대 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


울란바토르 시역과 그 근교는 어느정도 도로가 갖춰져 있는 편이지만 그 외 전국은 제대로 된 도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지도상에 대로처럼 표시된 길들도 실제로 가보면 비포장도로에 난 타이어 자국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길인 경우가 많고 교통표지판 따위도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직접 운전할 경우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인 곳도 많다. 

버스나 미니밴이 정기적으로 울란바토르와 주요 주도(울란바토르 외에는 10만 명이 넘게 사는 도시가 하나도 없으니 

기껏해야 한국의 읍내 수준) 사이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기는 하나, 울란바토르~서부의 '바양을기' 같은 경우 

길게는 50시간 걸리니, 험한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느니 비행기를 타는 편이 좋다.


철도 교통도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몽골의 남북을 종단하는 1,113km의 몽골 종단철도

(중국 북경~러시아 울란우데 연결) 하나뿐이다.


몽골에서 주요 철도는 사실상 중국 베이징역에서 출발해 몽골 울란바토르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을 통해 

러시아 철도로 이어지는 몽골 종단철도 단 하나라고 봐도 좋다. 

몽골 종단철도에서 뻗아나가는 약간의 지선이 몇 있으며, 동부 '처이발상'시에도 러시아 국경에서 

넘어오는 약간의 철도가 있으나 몽골 종단철도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고 몽골 동부는 여행자들도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 존재감이 없다. 

때문에 철도를 이용해서 몽골 내륙을 여행하겠다는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 

그나마 이 몽골 종단철도 인근에 있는 '다르한, 사인샨드, 수흐바타르, 자민우드'나 몽골 제2의 도시 

'에르데네트'같은 도시들은 철도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두편씩은 다녀서 제한적으로 철도여행이 가능하긴 하다. 

몽골 철도는 운임도 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 포장상태가 빈약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보다는 그래도 편하다.


울란바토르 이외의 각 주의 주도는 항공 교통으로 연결된다. 땅이 워낙 넓고 도로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짧은 거리라도 비행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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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여름이라도 밤에는 섭씨 5도까지 내려가서 춥다더라 등등의 온갖 정보를 제대로 소화도 못시킨 채

구 받아들여 계획에 반영했다. 다운점퍼에 슬리핑백까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더울지 몰라서 여차하면 겉옷을 하나 더 껴입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고

대략 가을철 복장으로 준비를 했다.


드디어 8월 10일 하루종일 짐을 확인, 또 확인하며 출발시각을 기다렸다.

인천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이 시골에서는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아 8월 11일 새벽 1시에

후배의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다.


새벽 3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장기주차타워에 차를 주차시키고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입도 몸도 심심해서 뭐가 없나 두루 살폈지만 그 새벽에 내 생각을 살펴줄 그 무엇도 없었다.

하릴 없이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 밖에...


5시 40분이나 되어서야 여행사측 직원이 나타나 일정계획을 설명하고 비자발급 때문에 받아서 갖고 있던

여권을 돌려주더니 바로 가버렸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공항청사 안은 생동감이 확~ 살아난다.


어쨌건 그렇게 시간은 가서 드디어 출국 수속을 시작한다.

잘모르면서 여기저기 안내문을 보고 후배한테 '저쪽으로 가야 돼'하고 앞장서서 갔더니 이미 줄은 길게 늘어져 있고.....

그렇게 해서 들어갔는데, 안에서 보니 일부러 이쪽까지 올 필요가 없었었다.

에이! 후배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네...


안에 들어와서 돌아다녀도 면세점에서 소주 좀 사는 것 외에 할 일도 없는데, 이곳 저곳 기웃기웃하며

한참 시간을 때웠다.



(우리를 태우고 갈 A-330 항공기)


7시 55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도 한참을 머물다 8시 20분이 되어서야 이륙했다.


밤새 전혀 자지를 못한 터라 몹시 졸리다.

눈을 좀 붙이려는데, 기내식을 배식한단다.

기내식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것, 억지로 잠을 깨서 배식 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죽과 오믈렛중 어느걸 원하냐고 해서 잘알지도 못하지만 그냥 오믈렛을 달라고 했다.

와인까지도 몇잔 받아 마시면서 훌륭하게 아침 식사 겸 해장절차를 마쳤다.


좌석이 가운데라 내다 볼 창이 없으니 그냥 폰에 저장된 음악이나 들으며 시간을 때웠다.


몽골 하늘이 가까워지자 요동이 심하다. 그통에 화장실 가려다 승무원한테 두번이나 제지당했다.


11시 20분(한국 시간) 울란바토르 징기스칸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면서 어프로치할 때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니 그야말로 둥그스럼한 구릉이 많기는 많다.

그리고 말이 국제공항이지 우리네 시골공항보다 크지 않다.

그래도 A330 기종이 착륙할 수 있으니 라오스의 비엔티엔공항보다는 낫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공항이 작다고 울란바토르에서 좀 떨어진(70여km) 곳에 새로 공항을 건설하고 있는데,

현 공항 활주로보다 약 1.5배 정도로 길다.

그 공사를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에서 시공하고 있단다.

아마 급속히 늘어나는 관광객수를 감당하기 위해 점보기 등 초대형 항공기 취항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2050년까지 수도까지 옮긴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하늘색 선 안은 현 공항, 아랫부분의 붉은 색 안은 새로 건설중인 공항>


<공사중인 신공항>


입국수속을 하는데, 몽골에 머무는 곳을 기재하지 않아 '빠꾸'당했다.

여행일정 1일차 숙소(선진그랜드호첼)를 적어넣으라는 조언을 듣고 돋보기 안경을 억지로 맞추어 가며

그 칸을 채우고 나서야 통과했다.

8명의 일행중 가장 늦게 팀에 합류했는데, 여태껏 그런 일이 없다가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창피하기도 하고...

하여튼 짐을 다 챙겨서 일행을 태우고 다닐 마이크로버스에 타자말자 11시 50분부터 바로 우리 팀의

여행일정이 시작되었다.


울란바토르시내로 들어가 몽골 불교의 요람인 '간등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운전기사의 운전습관이 점쟎지는 못하다.

아니 그보다는 거기 운전문화가 성숙되지 못했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시내 어디를 둘러봐도 길거리에 나와 있는 차의 80%는 일본의 토요타 차량, 10%는 그 나머지 일제차량,

3%대 정도가 우리나라산 차량(주로 현대)이다. 


이동중에 차창을 열고 다녔는데, 기온이 선선하다.

울란바토르의 위도보다는 거기가 1,350m 고지대이다 보니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공기는 탁하다. 매연에다, 거리에 흙먼지도 많고 하다 보니 매케하기도 하고, 특히 디젤엔진 차량이

지나갈 때면 차창을 잠시 닫아야 할 정도이다.

그리고, 울란바토르에는 3개소에 화력발전소가 있어서 그것들이 내뿜는 매연만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모든게 용서가 되었다. 왜냐하면 몽골이니까...


12시 40분 간등사에 도착했다. 


(本堂 앞, 수염 때문에 선배 같아보이는 후배와 함께)


(몽골 유일의 불교대학, 150명의 學僧이 있다)


(사리탑 같은데, 뭐라더라?)



(저 본당안에 있는 27m짜리 불상. 구 소련이 파손한 것을 네팔과 일본의 지원으로 복구했다.)


간등사에 도착하자 살짝 비가 뿌려진다. 이 비가 바로 뭔가를 암시하는 전조였음을 그 때는 어찌 알았겠는가.


간등사 관람을 끝내고 바로 점심식사를 위해 다시 이동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도 한국인 식당이 즐비하다.


(남도한정식 식당)


밑반찬부터 메인디쉬까지 상당히 수준 높다.

유럽여행때 제공되는 밥상에 비하면 거의 국빈대접 상이다.

채소류가 귀할텐데 채소 반찬이 제법 많아서 돟았다.

다만 고기의 나라인데도, 반찬으로 나오는 고기는 냉동육이었던 듯 살짝 질겼다.


오후 2시 20분 식사를 끝내고 '자이승'전승기념탑을 향해 출발했다.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계단을 한참 걸어올라가야 했다.





몽골의 독립전쟁 승리 기념 조형물로서 그 주역인 수흐바타르장군에 대한 존경과 함께 독립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걸로 봐서 800여년전의 그 영광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파노라마사진으로 보니 울란바토르는 제법 넓고 크다)


이어서 근처에 있는 이태준열사 기념공원.

웬 한국 이름인가 했더니 한국인(조선인)인데 이역만리 몽골땅에서 몽골인들에게

의술을 베푸는 한편 몽골의 독립전쟁을 적극 도운 사람으로 현지에서 그렇게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기념공원의 규모나 전시자료는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위에 보이는 조그만 기념관과 정자가 다이다. 하긴 옆에 있는 화장실도 공원 규모를 더했다)


거기서 첫날의 숙소인 선진그랜드호텔로 왔다.

한국 사람이 투자해서 운영하는 호텔인데, 크고 좋아 보였다.

객실마다 30년 된 골동품인 LG제 에어콘이 하나씩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을 갖게 했다.



숙소로 오기 좀전 이동중에 가이드에게 부탁, 13년전의 XX대 몽골인 동기생과 전화연락을 했는데, 감격적이게도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했다.

드디어 오후 6시, 호텔 로비에 그 친구가 나타났다.

반가움에 대충 인사하고 다짜고짜 시내로 나가자는 그를 진정시켜 호텔안 한국식당에서 한잔하기로 합의를 보고

식당 별실로 갔다.


친구가 한국말을 많이 잊어먹어서 의사소통이 잘안됐지만, 명함을 건네주고 이러저러 해서 대충 뜻이 통했는데,

현재 몽골정부의 모 장관 보좌관인데, 곧 퇴직한다던가 그렇단다.

그리고 자기 고향(헨티아이막)에서는 자기가 유명인사라 영향력이 있으니 내년에는 자기 고향동네로 초청한다고도 했다.

 

(음주 시작단계)


하여간 몽골맥주로 입가심 하고 칭기스보드카를 퍼마셨다.

맥주는 몽골사람들이 자랑하던데, 내 입맛에는 잘안맞았고, 보드카는 도수가 세서 처음에는 다소 거북했지만

좀 마시다 보니 적응이 된 건지 별 저항감이 안들었다.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고, 노래방까지 간 건 기억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은 쓰린데 머리는 말짱했다.

보드카가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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