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30(토)


열대지방치고는 꽤 선선한 아침공기를 대하며 일어나 씻고 7시 반쯤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주문하는데 실내가 어둡고

조명도 희미해서 老眼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아 주문서에 대충 체크햇더니 어제와 비슷한 음식이 나왔다.

숙박비에 포함된 조식인데도 정말 먹을만한 수준이었다.


4층 숙소로 올라가 양치질하고 나오다 각 방을 돌며 청소하는 종업원을 만났는데 '싸바이디'하며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생각해보니 경기장으로 나갈 때 매일 한번 방에다 팁으로 미화 1달러를 탁자 위에 두고 나왔는데 그게 효력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다.

다시 경기장으로 나가 야구유니폼 입은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팀 경기를 관전했다.


<이건 제1경기 장면...>


관전하다 여기서 야구하는 라오스 아이들은 평생 치킨을 못먹었다는 말이 기억 나서 후배와 의논 끝에 치킨을 사주기로

하고 미화 200불을 주최측 인사에게 건넸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경기 관전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한참 뒤 주최측 모 인사가 '라오스 치킨 맛 좀 보라'며

갖고 왔다.

좀 짭쪼름하지만 먹을만 했다.


또 다시 돌아온 점심시간...

뭘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으니 '유명한 도가니칼국수집'소개받고 경기장을 나섰는데 '허름하고,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가 있는 집'을 아무리 찾아 헤매도 그집이 그집...


한참을 찾다 포기하고 '나이 든 할머니가 문간을 지키고, 젊은 딸이 식사를 나르는' 허름한 국수전문점(Noodle Bar)에

들어가 메뉴판 사진을 보고 소고기 편육을 얹어주는 국수를 주문했다.

"노 팍치"하면서 팍치를 넣지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국물 속에는 어김없이 팍치향이 풍겼다.

"남듬 능 깨우(생수 1병)"하며 물 한병을 주문해서 나발 불며 호텔로 가서 신변정리후 간단히 午睡를 즐기다 경기장으로

갔다. 


<문제의 그 국수...>


경기장으로 오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은 지금이 1월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다음 경기는 외인구단 對 일본교민팀...

선발로 낙점 받고 천하의 이만수감독과 배터리를 이루어 피칭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이감독과 캐치볼 도중 갑자기 발목으로 날아오는 공을 미처 허리를 굽히지 못해 발목에 공을 맞았다.

아픈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주변까지 시커멓게 피멍이 들었다.


<공 맞은 당일...>


게다가 실제 경기에 들어가서는 제구를 잘못해 1회에 3점이나 내주고 이만수감독과 함께 자원 교체...

그날 일본과의 축구도 있는 날이라 기필코 이기자며 KBO출신의 라오스 청소년야구단 코치진들까지 함께 뛰었는데

일본 교민팀은 체구가 자그마하면서도 정말 기본기가 탄탄하다 싶도록 야구를 잘했다.

우리팀 선수들이 정말 잘친 타구도 빠른 발로 뛰어가 잡아내는 통에 점수가 잘안나다가 5회에 들어 겨우 6:4로

역전승했다.

하여간 억지로 이겼다.

모 코치가 '경기에서 지고, 매너에서도 졌다' 할 정도로...


그렇게 그날의 경기가 끝나고 라오스 청소년야구단장의 '센터' 방문 요청을 땀내 나는 유니폼을 핑계로 고사하고

호텔로 돌아와 씻은 뒤 후배와 함께 시내 나들이를 나섰다.


<숙소 부근 일대는 '여행자의 거리'로서 중심가에 속하는데도 배경은 많이 어둡다.>


라오스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겠다는 의욕으로 거리로 나서기는 했는데 막상 마음이 가는 데가 없다.

결국 어제의 그 한국밥집으로 들어가 메뉴를 고르다 소주 1병을 겻들여 오징어덮밥을 시켜 먹었다.

열대지방이라 그렇겠지만 건조 오징어로 요리를 해서 옳게 맛을 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왠지 아쉬운 음식맛에 여기서 유명한 도가니칼국수 이야기를 꺼냈더니 밥집 사장 왈, '여기는 전부 화학조미료로

맛을 낸다'며 '유명한 집이건 아니건 무조건 국물 맛이 비슷한데 그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밥집에서 좀 앉아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라오스 국가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점은

부패한 국가 지도층, 한심한 국민들... 이란 거다.

舊소련이 뭐라고 아직도 각 건물에는 라오스 국기와 舊소련기를 함께 게양하고 있다.

舊소련을 라오스의 정치적 기준으로 삼으면서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자동차 생산공장 하나 없는 나라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인구 수에 비해 자동차 대수가 너무 많다.

브랜드별로 따지자면 토요타 60%이상, 현대기아차 30%, 기타 10% 정도...

최고급 수준의 승용차들은 주로 당간부들 자가용이며,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정도의 부자들도 이곳 라오스에서는

명함도 못내밀 거란다.


식당과 상점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은 희미하고 내부는 어두컴컴하고,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은 맨발로 거리를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데...


그럼에도 행복만족도는 상위라는데, 이는 이 나라가 프랑스- 태국- 베트남의 식민지배에 이어 공산정권 통치로 인해

국민들은 자포자기하고 희망이라든가 국가부흥 등 진취적 욕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산정권이 그렇게 국민들을 통제해서 그렇겠지만...


그나마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지인들은 거의 없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나로서도 그것 하나 만큼은 칭찬하고 싶다.


<전주에 얽힌 각종 전선들까지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숙소로 돌아와 그냥 쉬려다 뭔가 아쉬워서 후배가 다시 밖으로 나가 근처 길거리의 닭다리와 이름 모를 안주를 사와서 

대전서부터 갖고 온 팩소주를 8개나 꺼내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TV를 보는데 우리나라의 YTN채널이 나와 뉴스를 들으며 많은 위안이 되었다.


한참 술을 마신 뒤 내일 경기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끝내자고 하고서는 화장실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 세숫비누로

얇은 언더웨어 하나를 세탁했다.

참, 화장실 변기에 딸린 수동식 비데가 좀 특이했다.


빨래후 담배 한대 피우려 호텔 발코니로 나왔더니 국립경기장에는 경기용 라이트가 환히 켜진 가운데 젊은 이들의

축제가 한창인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전날 밤에는 호텔 옆 국립예술문화회관 야외에서도 밤 늦게까지 쿵쾅거리며 젊은이들이 노는 걸 봤는데...

아마 공산 독재정권이 젊은 이들의 정치적 욕구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그런 식으로 배출구를 마련해준 게 아닐까 싶다.


<국립 예술문화회관..>




2016. 1. 31(일)


어느듯 행사 마지막날이 되었다.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갔더니 독일 단체관광객이 같은 호텔에 묵었던 탓에 거친 억양의 독일어가 식당 가득히 찬다.

15분여를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다 겨우 자리를 찾아 식사를 했다.


09:00경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보이지를 않다가 30여분이 지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참 있다 시작된 경기를 관전하면서 주최측 謨인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① 외국인의 라오스 학생 교육은 금지되어있다.

    이는 공산정권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 사상 주입을 우려한 탓으로 보여진다.

    비슷한 맥락으로 美 CIA에서 라오스 북부에 주로 분포한 몽族 반군을 지원해왔는데, 몇년전 謀선교사가 미국에서

    몽族의 개신교 신자를 만나고 온 것을 인지하고 그 선교사를 강제출국 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야구 교육은 예외로 인정해준단다.

② 라오스는 국민이 당간부 등 공직자와 서민계층으로 양분화/계급화되어 있고 서민들이 민주화에 대한 욕구나

    저항의식도 없이 무기력하게 무조건 복종하는 분위기가 고착되어 있단다.

    쉽게 말해 공무원들은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하부계층인 서민들에 대한 착취행위가 다반사이고, 서민들은 하루에

    얼마정도 수입을 올리면 남은 시간에 맥주나 차를 사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부존자원도 없는 나라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③ 정부도 국가 차원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노력 없이 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49개 종족으로 구성된

    나라임에도 국가통합을 위한 노력도 등한시하고 있어서 아직도 북부지방의 몽족은 반정부활동을 벌이고 있단다.

    수도 비양쨘은 라오스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북부지방의 루앙프라방까지 항공편으로는 1시간도 안걸리지만

    육로로는 10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도로망이 불비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국가통합이 옳게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④ 아이들이 단칸방에서 부모의 성생활을 목격하고 자라다 보니 어릴 때부터 성풍기가 문란하다고 한다.

    남녀 구분 없이 죄의식이나 부담감 같은 건 아예 없고, 남에게 노출되는 것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딸이 미혼모로 아기를 낳아 와도 부모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아기를 키워준단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돼서 예의 그 밥집으로 가서 냉면 한그릇 해치우고 숙소로 가서 한숨 자고 일어나 경기장으로 갔더니 마지막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둘러 몸을 풀고 등판, 2이닝을 던졌다.

이미 질 경기라 별로 기대도 안했고, 별 의미도 없어서 5회로 경기를 끝내고 바로 시상식을 시작했다.

라오스 청소년야구팀이 4승 1패인가 3승 2패인가 해서 우승...

그 아이들한테는 사뭇 감격적이었던가 보았다.

연3일 동안 5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적으로 무리도 갔고, 부상자도 몇명이나 되었는데 다들 밝은 얼굴이었다.

 



<시상식과 기념촬영 장면..>


시상식이 끝나고 주최측에서 '센터'에 식사하러 가자고 해서 가 봤더니 그 '센터'가 바로 야구훈련센터, 청소년야구단

멤버들이 야구훈련과 기숙을 하는 그런 시설이었다.

거기서 돼지불갈비와 찹쌀밥으로 식사하는데, 서울에서 오신 최연장자의 비밀실탄(소주)으로 몰래 반주를 겻들이니

나름 즐거웠다.

다만 찹쌀밥은 끈기가 강하고 좀 딱딱했다.


<센터에서의 회식..>


이윽고 밤이 깊어져 센터에서 나와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오늘이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뭔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라오스 비양쨘의 밤거리를 잠시라도 걸어보자는 생각에 거기서 가깝다는 메콩강변 야시장을 의중에 두고

길을 나섰는데 도대체 그놈의 메콩강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몇 블록을 돌아다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웬만한 곳은 내일 낮에 돌아보기로 하고...

 

<숙소 인근의 야경..>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