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별 증상이 없다고 여겼던 30~40대에게도 검진에서 가장 흔히 나오는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위, 십이지장의 궤양이나 염증이다.
특히 십이지장궤양이 최근 젊은 층에서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전문의들은 우려한다.
소화성 궤양이 점차 현대화, 서구화하고 있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십이지장 질환 왜 늘었나
우리나라에선 오래 전부터 위궤양보다는 십이지장궤양 환자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점차 십이지장궤양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많은 전문의들이 입을 모은다.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건 스트레스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생활환경과 강도 높은 업무량이 소화기관에 염증을 일으키고, 이게 심해지면
조직이 헐면서 궤양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이동수 교수는 "실제로 운전사나 은행원 등 신경을 많이 쓰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서 십이지장궤양이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또 최근 들어 점점 서구화하고 있는 식습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고기류를 비롯해 기름기 많은 음식을 자주 먹으면서 소금 섭취량도 좀처럼 줄이지 않으니
소화기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인종이나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서구에는 일반적으로 위궤양보다 십이지장궤양이 더 많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폐나 간, 췌장이 나쁜 사람은 특히 십이지장 염증이나 궤양에 취약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폐나 간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많은 경우 혈액순환 장애를 갖고 있다.
혈액순환을 개선시키는 약을 많이 복용하다 보면 위나 십이지장 안쪽의 점막이 손상되기 쉽다.
또 십이지장과 가까우면서 기능적으로 연관이 많은 췌장에 염증이 생기면 십이지장 쪽으로
잘 옮겨가기도 한다.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 환자도 십이지장궤양 발생 빈도가 높은 편이다.
부갑상선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활발해지면 몸에서 칼슘 분비량이 늘고, 이렇게 증가한 칼슘은
위산 분비를 촉진시킨다.
위산 하면 보통 위염이나 위궤양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십이지장 질환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십이지장 역시 위처럼 강한 산성인 위산으로부터 내부 점막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위산이 너무 많으면 이 기능이 약해지면서 점막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위염과 위암의 주범으로 잘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십이지장궤양의 위험인자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국내에선 위궤양은 진통제 같은 약을 지나치게 복용해서 생긴 경우가 많고, 오히려
헬리코박터가 십이지장궤양의 유병률이나 재발률과 더 연관성이 많다"며 "50~60대 소화성 궤양
환자의 70~80% 정도가 헬리코박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헬리코박터는 원래 위 속에 살지만, 주로 염증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부위는 위와 십이지장이 연결돼
있는 접합부(전정부)다.
여기서 생긴 염증이 십이지장 쪽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위궤양 증상과 다른 점
소화성 궤양 환자의 약 3분의 1은 실제로 증상이 없거나 애매해 특이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또 십이지장의 염증이나 궤양은 종종 위염, 위궤양과 헷갈리기도 한다.
위궤양 증상은 주로 식후 30분 이내에 짧은 시간 동안 명치 부위가 아프거나 쓰린 형태로 나타난다.
제산제를 먹어도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만큼 심한 경우도 많다.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 만큼 식욕부진을 호소하는 환자는 십이지장궤양보단 위궤양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십이지장궤양은 명치 부위 통증이 식후 90분~3시간 사이에 발생하며, 음식이나 제산제를
먹으면 상대적으로 통증이 더 잘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통증이 등 쪽에까지 뻗치거나 한밤중에 자주 아프기도 한다.
공복 때 특히 속 쓰림이 심해지는 것도 십이지장궤양의 특징이다.
위와 십이지장 공공의 적
십이지장궤양, 위궤양을 예방하거나 악화를 막으려면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최소한 3가지는 꼭 주의하라고 전문의들은 권한다.
바로 담배와 우유, 커피다.
담배를 피우면 위가 내용물을 내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산 분비가 늘고, 위산에 대항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헬리코박터에 감염될 가능성이 증가한다.
소화성 궤양 환자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1년 안에 궤양이 재발할 확률이 20%에 그치지만,
흡연하면 72%로 치솟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화성 궤양이 있을 때 우유를 마시면 증상이 나아진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우유에 들어 있는 칼슘이 오히려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궤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궤양이 심하다면 호전될 때까지 되도록 우유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커피가 직접적으로 소화성 궤양을 일으킨다는 보고는 아직 없지만, 헬리코박터 감염률을 높일 수
있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