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순전히 나이만 갖고 충남도민체전 계룡시 야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두어달 전부터 몇차례의 연습을 통해 선발된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특성을 어느정도 파악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상태로 출정하게 되었다.
거기다 당초에 선발했던 선수출신 1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 비선출이지만 타격과 수비가 뛰어난
또다른 선수 2명은 여수 엑스포행사에 차출되어 불참.. 이런 사정이다 보니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시장 주관 발대식을 마치고 체전 개최지인 서산으로 이동하여 제일 먼저 야구장 사정부터 살펴 보았다.
두개의 면으로 내야는 우리나 거기나 비슷했고, 외야는 B구장이 체전에 대비해서 잘가꾼 듯 양호하나
A구장은 상당히 거칠어 보였다.
구장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주고받으며 종합운동장에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개막식에 참석하려고
대기하면서 특전사 장병들의 고공낙하 시범에 이어 산림청 헬기와 한서대 훈련기의 축하비행까지 구경했다.
※ 항상 공군 신예기의 축하비행만 보아온 터라 우습기 그지 없었으나 진지한 성의는 느껴졌다.
그런데 7시로 계획된 개막식 본행사가 자꾸 늦어진다.
알아보니 날이 너무 밝아 불꽃놀이를 해도 잘보이지 않아서 시간을 좀 늦춘단다.
그렇쟎아도 개막식장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타이밍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되던 터라
개막식에 불참하고 숙소로 가서 일찍 쉬기로 했다.
<입장식 대기중>
다음날 아침, 야구장과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곧장 구장으로 가서 한켠에 있는 연습장에서
선수들 몸을 풀도록 하고 첫경기를 진행중인 양쪽 구장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우리 팀 실력과
비교해봤다.
특히 우리가 1차전을 이겼을 때 밎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태안군과 보령시 팀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다 같은 것이라.. 우리팀 모든 선수들이 다른 팀의 경기를 지켜본 모양...
모두들 '한번 해볼만 하다'는 반응이다.
선수 출신이 한명도 없는 우리팀 멤버들은 '다른 팀들은 선수출신이 몇명이라더라' 등등의 소식에
다소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볼만하다는 반응은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긴다는 이야기일 터...
<서산 잠홍야구장>
이윽고 11시30분 청양군 대표팀과의 첫경기.....
경기하기전부터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지만, 실제로도 우리가 강했다.
타격이나 수비가 두드러진다기 보다 기동력과 투지면에서 앞섰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9:2로 낙승했다.
<자원봉사하던 부녀회원이 자청해서 하나 찍어준 사진.. 액자까지.. 감사!>
1차전을 가볍게 이기고, 늦은 점심식사후 인근 군부대의 운동장을 빌려 대체로 부진했던 타격연습을 했다.
※ 그런데 이날 오후의 타격연습은 다음날 경기에서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씻은 뒤, 첫날의 승리감을 간직한 가운데 그럴싸한 저녁식사를 했다.
드디어 2일차.....
2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좀 더 긴장한 듯 했다.
전날 태안군 대표와의 경기에서 막판 역전승을 일구어낸 보령시 대표팀과의 경기였으니...
일단 1차전과 마찬가지로 1번타자가 출루해서는 마운드를 휘저어놓았다.
뒤이어 터진 4번타자의 홈런도 효과가 컸다.
작전이 잘먹히는 것 같았다.
초반 대량득점으로 상대방의 기를 거의 꺾어놓았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쉽게 들뜨는 것 같다.
'오늘 감독님이 짠 배팅 오더가 너무 잘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내가 '제발 입방정 좀 떨지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도 만만챦은 실력이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6회에 10:10 동점을 허용했으니...
다행히 마지막 공격에서 우리 선수들이 2점을 추가하고, 더이상 실점하지 않아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3차전...
우리 선수들은 점심도 거른 채 바나나 한개로 끼니를 때우고 30분만에 경기에 들어갔다.
상대는 아침 일찍 경기를 끝내고 3시간이나 쉰 아산시 대표팀...
변함없이 우리는 초반 대량득점을 노렸고, 작전대로 되는 듯 했다.
5:0, 8:3..... 그야말로 결승까지 진출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교체멤버가 없이 옳게 쉬지도 못한 우리팀은 선수들이 너무 지쳤다.
모두들 까지고, 멍들고, 삐고... 게다가 어제 연습까지 많이 했으니...
다들 발이 땅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아산시 팀은 에이스를 일찍 투입하니 우리는 더이상 득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친 우리 에이스의 공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초저속 투수를 투입하고 뒤이어 또 다른 투수를 투입할까.. 생각도 했으나 우리팀 에이스가
마운드에서 쓰러지더라도 던질 수 있을 때까지, 후회가 남지 않도록 계속 던지게 해달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상황에서 나는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옳게 못했다.
감상에 치우쳐 에이스의 소망을 따라주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산시 팀에게 역전패했다.(아산시는 익일 결승전에서 완승했다.)
공주시와 공동 3위, 동메달이다.
우리는 동메달 땄다고 다들 기뻐했다.
오직 투지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모두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킨 듯 했다.
그리고 감독인 나를 헹가레쳤다.
내가 헹가레쳐지기는 18년전 마지막으로 총동창회 야구대회때 동기들한테 쳐진 이후 처음이다.
지고도 이다지 기뻐하는 우리팀을 보고 상대팀에서는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제서야 점심을 먹지 않은 게 생각나면서 배가 고파온다.
점심때 선수들한테는 무조건 바나나 한개씩이라도 먹으라고 윽박지르다시피 해놓고 정작
감독인 나는 물 몇모금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2시간여 걸려 우리 동네로 돌아와 우리 市야구연합회장의 격려 회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다시 내년을 기약했다.
이제 우리가 그렇게 들떴던 잔치는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 감흥이 쉬이 식지가 않는다.
벌써부터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갔을 우리 멤버들이 많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