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수)

오늘은 본격적인 리스본 투어를 계획한 날이다.
08:00 지정된 시각에 맞추어 아침 식사를 했는데, 가격 대비 식사의 질이 괜챦다.
08:50 숙소를 나와 리베르다데거리를 따라 20여분 걸어 호시우광장까지 와서 리스보아카드를 사려고 주머니를 뒤지니 젠장, 지갑을 안갖고 나왔다. 참담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 외국 땅에서... 별 수 없이 숙소까지 되돌아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관광객을 위한 미니 자동차>
<유명한 호시우광장과 그곳의 물결무늬>

그렇게 다시 호시우광장에 도착해서는 관광안내소에서 리스보아카드를 사려고 했더니 10:00가 되어야 문을 연단다. 지금 어디 다른 곳에 갈 여유는 안되니 근처에서 사진이나 찍으며 기다리다
10:00가 되자 직원인 듯한 여자가 근무를 시작하길래 리스보아카드 24시간짜리를 20유로 주고 샀다.
50유로 지폐를 냈는데 ‘영업시작 시간이라 잔돈이 없다’며 ‘카드 있냐’고 물어 카드를 내밀었더니 결제가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스본 투어를 시작할 준비를 갖췄다.

<보이는 호시우광장의 우하단쪽에 문 닫힌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09:20 상 도밍고성당에 도착해서 밖을 훑어보는데, 외관이 많이 낡아보였다.
거기다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성당 입구 쪽에는 걸인들이 있는데, 여기는 인도계 여자 걸인이 구걸하다 무슨 일인지 휴대폰에다 대고 고성으로 떠들고 있었다. 조금은 언쨚은 마음으로 상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미사를 진행중인 성당 안을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평정이 되는 듯 했다.
성당 벽에 총탄 자국인 듯한 상처들과 미사 장면을 10여분간 구경하다 돌아나왔다.

<상 도밍고성당 밖과 안>

<피게이라광장>


당초 계획에는 무어양식의 성채와 궁전이 있는 상 조르즈城을 가보려고 했는데, 그게 저~기 산 정상에 있어서 멀지는 않지만 성치 않은 발목으로 걸어 올라가기는 무리라 밑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상 조르즈城>


리스보아카드를 써먹기로 하고 28번 트램을 타려니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차피 여기 부근에도 명소가 많으니 도보로 움직이기로 하고 리스보아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고, 가까운 산타 주스타(스페인식 발음은 '후스타') 엘레베이터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뭐람...  줄이 얼마나 긴지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길래 그 유명한 물건(?)을 눈으로만 담고 산타 주스타 정상에서 사방으로 보이는 전망은 깔끔히(?) 패스했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10:40 고풍스런 골목길-아우구스타거리-을 걸어 조금 남쪽으로 걸어가니 아우구스타 개선문이 높다랗게 보이고, 그 뒤로 코메르시우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마누엘 1세의 리베이라 궁전이었는데 1755년 리스본에 들이닥친 대지진으로 도시가 초토화된 후 폼발侯爵 주도로 재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잠시 빗방울이 떨어졌으나 금방 하늘이 맑아지면서 햇빛은 더 강해졌다.

<코메르시우廣場>

※ 참고
리스본 대지진은 지진파와 함께 쓰나미로 인해 최소 3만에서 최대 10만명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도 '저주의 도시'를 떠나버려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현대 기술로 추정한 당시 지진의 강도는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9수준. 1556년 중국 산시성 대지진(진도 10, 사망자 80만명)보다 피해 규모는 작았지만 유럽 역사에 미친 파장은 훨씬 컸다고 한다.
먼저 종교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서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신에게 정의가 있고 신도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런 참극이 가능한가. 그토록 신앙심 두텁다는 리스본이 파리나 런던보다 죄가 많았기 때문인가'라며 울었단다.
교회도 신도들의 분노 때문에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포르투갈 정부 또한 폭동을 우려해서 교회에 '응징론'을 피해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교회는 '재앙과 신의 섭리는 상관이 없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자연과학은 점차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학문의 세계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당장 지질학이 생겼다. 17세기 중반부터 발명과 기술 개발이 잇따르고 산업혁명이 순식간에 퍼진 것도 이런 토양에서다. 무고한 인명의 희생으로 종교 이데올로기가 終焉을 맞은 자리에 과학기술이 꽃핀 셈이다.
<자료 출처 : 위키백과>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좀 쏘이다 제로니무스修道院으로 가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 728번 버스를 타면서 처음으로 리스보아카드를 써봤다.

&lt;리스보아카드&gt;

12:05 제로니무스수도원에 도착, 역시 리스보아카드로 무료입장해서 안을 둘러보았다.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신을 공경하고 찬양하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에 대한 경외감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lt;제로니무스修道院&gt;


그야말로 ‘그냥 둘러보는’선에서 끝내고 큰 도로 건너편에 있는 '발견기념탑'으로 향했다.
12:30 발견기념탑에 도착해서 바스쿠다가마와 엔리케 등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주역들이 조각된 탑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돌아보며 기념촬영을 하다 벨렝탑으로 가기 위해 옆으로 이동했다.

&lt;발견기념탑&gt;

12:45 벨렝탑에 도착, 리스보아카드로 무료입장이 가능항 곳이지만 대기시간이 길어 점심식사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내부 입장은 포기하고 외관만 감상하다 신트라의 페나왕궁으로 가기 위해 서쪽으로 한참을 걸어 750번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lt;벨렝搭&gt;


원래 계획대로라면 도중에 식사를 해야 되지만 들를 작정이었던 그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리스보아카드를 써서 750번 버스와 전철 녹색선을 타고 잘가서 신트라에서 내렸다.
전철역에서 50센트를 내고 화장실을 들렀다.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에서는 화장실 요금을 칼같이 받는다.
전철을 탔는데, 좌석은 여유가 있고...
좀 낯설게 느껴지는 게 여기는 스페인에 비해 흑인들이 많다. 10명중 4명 꼴로...


14:25 신트라역에서 내린 다음 가장 먼저 식당부터 찾았다. 중국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갔더니 ‘올라’에 이어 ‘니하오’하고 인사한다. 동양인이 들어오니 혹시 중국인인가 싶어 그러는 거겠지만 ‘올라’라고만 대꾸하고 앉으니 메뉴판을 갖다주는데, 여기서도 뭐가 뭔지를 잘모르겠다.
아무렇게나 7.70유로짜리 면요리를 시켰더니 나온 음식이, 굳이 이름을 대자면 ‘새우볶음면’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장한 터에 먹기야 깨끗이 먹어치웠지만 스페인 우엘바에서의 그 중국식당과 많이 대비가 된다. 가격과 음식의 質·量 모든 면에서...

15:05 산 정상에 있는 페나왕궁으로 가기 위해 왕복요금 6.90유로를 지불하고 434번 투어버스를 탔는데 정상이 저 앞에 보이는 지점까지는 잘 가더니 길이 막혀 요지부동이다. 그렇게나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내려서 걸어 갔을텐데 맹하니 앉아 있다 보니 거진 1시간 가까이 허비했다.

&lt;신트라지역의 민가&gt;
&lt;페나왕궁으로 올라가는 길에 멀리 신트라궁전이 보인다&gt;

16:10 그렇게 종점까지 걸어갔더니 다시 표를 사느라 줄을 서고, 또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뒤틀어진 심사에다 성치 않은 발목을 생각하니 순간 ‘집어쳐’ 하고 욱하는 마음이 일어 바로 돌아서서 내려오는 버스를 타고 돌아나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까지 가서...’ 하고 후회가 많이 되지만 그 당시 몸과 마음이 그만큼 피곤했던가 보다.

&lt;페나왕궁 사진은 구글에서 빌림 ; 이렇게도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데, 나는...&gt;

16:40 신트라역에서 다시 리스본 시내로 가는 전철을 탔다.

&lt;신트라와 리스본 시내를 잇는 교외선 선로변; 끝없는 그래피티가 황량함을 덜어주는 듯하다&gt;


40여분 지나 그 유명한 호시우역에 도착해서 역내를 한번 둘러본 뒤 천천히 걸어 숙소로 복귀해서는 얼른 씻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가까운 곳의 식당에서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문어스테이크와 맥주 1병을 주문했는데, 22.90유로의 가격에 비해 맛이 별로다.
식사후 그냥 숙소로 들어와 잤다.

&lt;호시우역 내부&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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