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일)

05:20 이번 여행 기간중 가장 늦게 일어났다. 어제 좀 피곤해서 그렇겠지...
사전에 지불한 아침 식대는 그냥 날린 채 씻고 짐 챙겨서 07:50 밖으로 나섰는데, 비가 내린다.
많은 비가 아니라 그냥 맞으며 50여m 거리인 큰길까지 가서, 반대편 방향의 택시를 손을 들어 불러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어제 밤에 버스로 왔던 그 길로 되돌아 나가고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말자 거기 직원의 도움을 받아가며 승차권 무인 발매기에서 코르도바행 버스표를 끊어 조금 기다리다 버스가 와서 일단 올라탔다.

내 자리 옆에 어떤 동양인 여자가 앉아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창가의 내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어디서 왔는지 말을 걸어볼까 하다 마요르카공항 사건으로 아직 덜 풀린 심사가 그걸 용인하지 않아 가만 있었다.

08:30 버스가 출발, 버스가 달리는 연도에는 온통 올리브과수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강수량이 적은 이곳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 올리브란다. 그래서 ‘신의 선물’이라나...


버스가 한참 달리는 도중에 이것저것 메모하는 나를 본 건지 옆자리의 여자가 내게 말을 건다. 한국말로...
그제서야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때웠다. 특히 해외여행에 관한 관점을 이야기하는데 수긍이 간다.
지금 나는 출장인지 여행인지 분간이 안되는 짓거리를 벌이고 있으니...

11:25 4군데의 중간 정류소를 거치며 3시간 가까이 달려 코르도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침 점심때도 됐고 해서 근처 식당에 가서 함께 점심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터미널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가니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코르도바로 가는 도중에 들르는 어느 작은 소읍; 여기도 산 정상에 성채가 있다>
<언덕 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상하수도 시설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다>


도로 안으로 들어와 맡긴 수하물을 되찾고 환불을 요구하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는 표정이다.
그래 때려치워, 이제 곧 세비야로 가는 아베 고속열차만 타면 이후부터는 모든 일정이 정상화되는데 그까짓것 뭐...

우선 배가 고픈 참이라 터미널 구내 매점 겸 식당에서 핫도그와 오렌지주스를 사서 점심으로 때웠다.
주인과 영어가 안통해 모처럼 짧은 스페인어를 동원했다.
고속열차 아베를 탈 시간까지 두시간여 여유가 있으니 메스키타를 보고 갈까 하다 그냥 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표 창구로 가서 좀 더 이른 열차로 바꿀 수 있냐고 물어 6.1유로를 더 내고
13:19 코르도바發 열차로 바꿨다.
다음 일정이 세비야에서 콜룸부스 관이 안치되어 있는 세비야대성당을 예매한 입장권대로 제 시간에 가려면 여유가 있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당초 계획했던 코르도바 투어 일정도 모조리 삭제...


아베 고속열차의 속도는 우리나라의 KTX급이고, 조금 더 흔들리는 것 같기는 한데 내부 설비나 승객 편의성면에서 한단계 위다. 그런데 본래 9호차였으나 승차권을 바꾸다 보니 2호차라 개찰후 한참을 앞으로 가서 열차에 올라탔다.

<스페인의 자랑, 렌페의 초고속열차 '아베'>

13:35 드디어 세비야 산타 후스타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빠르게 빠져나와 21번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햇볕은 따가운데 버스 정류장 인근에는 그늘도 없다.

<세비야의 산타 후스타驛>


20여분이 경과할 즈음 21번 버스가 왔으나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그냥 보내고,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21번 버스 한대가 오는데 그 버스는 놓치면 안될 것 같아 평소 내 성향과는 다르게 양보 없이 올라탔다.
그렇게 해서 숙소인 한인민박 근처까지는 잘왔는데, 거기서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찾기 쉽다고 대충 구글지도에 표시한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숙소 사장과 통화해서 안내를 받아야 했다. 쉽다고 생각할 때 그 속에 함정이 있다고 해놓고도 말이지...
하여간 그 바람에 세비야대성당 입장 시각을 맞추는 게 큰 일이 되어버렸다.

<이 멋있는 골목에서 길을 헤맸다>


14:40 숙소에 도착해서는 일단 이틀치 숙박비부터 지불했다. 방에 들어가 얼른 짐만 풀어놓고 밖으로 나가 주변 지형을 한번 훑어 눈에 익히고는 대성당 방향으로 걸었다.

15:50 세비야대성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줄이 길다. e티켓이 있으면 간단히 입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 긴 줄 뒤에 붙어 있는데, 유럽인 젊은이가 e티켓이 있으면 따로 입장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봐서 나도 모르겠다고 하고서는 그 친구를 유심히 살피고 있으니 옆으로 들어간다.
나도 긴 줄에서 빠져나와 그 친구를 뒤따랐다. 그렇게 해서 제 시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세비야대성당 외관>


화려한 성당 내부야 유럽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구경거리지만 이곳에만 있는 콜룸부스의 공중 관은 내게 있어 이 여행의 핵심이다. 그것만 충족되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히랄다탑 입장까지 포함된 통합권을 예매했지만 발목이 아파 올라갈 수 없었다. 그래도 만족했다.
팔마 마요르카공항 사건 이후 응어리져 있던 마음이 많이 풀리는 걸 느꼈다.

<콜룸부스의 관>
<콜룸부스의 관을 멘 4왕(영주)중 앞의 2명은 고개를 들고, 콜룸부스와 사이가 안좋았던 뒤의 2명은 고개를 숙였다>


17:00 성당을 나와 구글지도를 들여다 보며 숙소로 복귀했다. 지금의 나한테 구글지도가 없으면 장님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숙소에서 샤워하고, 숙소 식당에서 컵라면과 밥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때웠다.

18:40 스페인광장을 가기 위해서 다시 숙소를 나섰다. 가는 길에 대항해시대때 끌어모은 황금을 저장했다는 황금의 탑이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조명을 켜서 그런가 낮에 버스 타고 지나올 때보다 더 이쁘다.

<황금의 탑>

이래저래 세비야의 밤거리를 이것저것 눈에 담으려 애쓰며 한참을 걸어갔더니 저 앞에 뭔가 볼만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광장이다.
사진으로 본 낮 풍경도 괜챦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밤 경치가 더 좋은 것 같다.

<스페인광장>

여기저기 돌아보며 사진 찍느라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에이...


급히 돌아나오며 택시를 잡아볼까 했으나 어림도 없다. 구글지도로 확인해서 버스를 탈까 해도 정류장이 멀다.
구글지도를 보며 지름길로 걷다 보니 비도 어느새 그쳤고 다시 세비야대성당이 나온다.
성당을 비추는 여러 전등 불빛이 낮과는 다른 또 하나의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역시 야경은 어디에서건 무조건 훌륭하다.

<세비야대성당 야경>


21:40 숙소로 복귀해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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