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1(월)

08:20 어둠이 채 물러가지도 않은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10분이 채 안되게 걸어서 32번 버스를 타고 어제 거쳐온 산타 후스타역으로 갔다.
역 안내소를 찾아가 영어로 ‘우엘바 가려는데 몇시 차가 있느냐, 돌아오는 차는 몇시에 있느냐’등을 물었더니 자기는 영어를 잘모르니 옆 창구로 가란다.

<산타 후스타역 인근 시가지의 아침 풍경>


10:00 왕복 승차권을 끊을까 하다 혹시 너무 일찍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몰라 편도 승차권만 끊어서 열차를 탔다.
열차 탑승구가 차의 중간 부위에 위치한 것이 낯설다. 또 진동과 소음이 우리나라 열차보다 작고, 가속이 빠르다.

<세비야의 산타 후스타역 내부>


오늘 가려는 우엘바(과거‘팔로스’)란 곳은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향해 출항하기전 5살짜리 아들 페르난도를 양육해달라고 맡겼던 라 라비다수도원(당시 원장 후안 페레스), 모든 선원들이 출항전 마지막 미사를 봉행한 산 호르헤성당, 그리고 첫 출항을 했던 까르벨라스 부두에 세워둔 당시 산타마리아호와 두 지원 선박의 복제품이 있는 곳이다.
거기서 콜룸부스의 비장하고도 담대한 각오를 짐작하고 느껴서, 나중에 손주들한테 들려주겠다는 생각 때문에 세비야대성당의 콜룸부스 관 무덤과 함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손꼽는 장소이다.

<우엘바를 가면서 보이는 한적한 시골 풍경>


11:40 우엘바역에 도착, 화장실을 들렀다 나오니 역 앞에 택시가 하나도 없다. 별수없이 시내쪽으로 5분여 걸어가다 보니 아파트단지인 듯한 곳에 택시가 몇대 서 있길래 맨 앞차에 타고 ‘라 라비다수도원’으로
가자고 했더니 ‘까라벨라스도 갈거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느낌이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는 가는 도중에 구글번역기로 ‘수도원에서 30분 기다렸다가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데 얼마냐’는 문장을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기사에게 그대로 읽어주었다. 그랬더니 ‘베인떼(20)유로’ 하길래, 미터기 요금에 20유로를 얹어달라는 말인가 하여 조금 깍쟁이다 싶었지만 OK했다.

한참을 달려 미터기 요금이 16유로쯤 나왔을 때 라 라비다수도원에 도착했는데, 문이 잠겨 있다. 이런...
수도원 내부 그림 중에 콜룸부스가 5살짜리 우는 아들을 수도원장에게 인계하는 장면 등등을 내 눈으로 봐야 그 당시 감정이 잘 移入될텐데... 하는 수 없이 바깥만 빙 돌며 사진을 좀 찍다가 기사에게 까르벨라스 부두로 가자고 했다. 구글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였는데 실제로는 제법 멀다.

<라 라비다수도원>


기사에게 입구 쪽에 주차해 있으라 하고는 안으로 걸어 갔는데, 젠장 여기도 문을 잠가놓았다.
또다시 별 수 없이 바깥에서 비스듬히 보이는 선박들 사진을 좀 찍다 기사에게 돌아가자 했더니 ‘저기가 중요한 포토존’이라며 사진을 찍고 오란다. 나중에 주워 들은 사실이지만 거기가 출항 지점이란다.

<이렇게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다>
<콜롬부스가 출항한 곳>
<귀환한 콜룸부스 ; 왼쪽에 들려져 있는 아이는 콜룸부스의 아들 페르난도>


12:30 시내로 돌아와 내리면서 일부러 ‘다 합쳐 얼마?(또도 훈또)’하고 물으니 ‘베인떼(20)유로’란다.
편도 16유로인 여정을 왕복에 대기까지 해주고도 20유로라니... 갑자기 우엘바가 좋아진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5유로를 얹어 25유로를 건네니 환한 얼굴로 ‘그라시아스’한다. 돈이 인사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조그마한 우엘바의 중심가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중국집이 하나 보인다.
사실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생각하며 들어간 거였는데 한참 잘못 짚었다.
하여간 메뉴판을 달래서 보니 백가지가 넘는 메뉴중에 고를 방법이 없어서 ‘노 아이 포토(사진 없어)?’ 하니 없단다. 그래서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뭐라 설명은 하는데 알아 듣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생수와 볶음밥 하나랑 뱀부 + 돼지고기 어쩌고 하는 걸 주문했더니 음식이 줄줄이 나오는데, 세가지 코스요리인줄 알 정도였다. 오늘 바가지 쓰겠구나 싶었다.
어찌 됐건 일단 나온 음식을 거의 다 먹어 치우고 계산을 하는데, 겨우 6.95유로란다. 사정만 허락한다면 저녁식사까지 하고 돌아가고 싶다. 이래저래 우엘바가 정말 마음에 쏙 든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우엘바역으로 갔다. 한산한 시골역에 할머니 할아버지 몇 명만 보일 뿐 손님이 별로 없는데, 앞 사람이 표 끊는다고 서 있길래 나도 그 뒤에 섰더니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자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자기 뒤에 서란다. 이 또한 알아들은 것이 아니고 눈치로 때려잡은 것이다.

그렇게 순서가 되어 역무원 앞에 서니까 역무원이 ‘오라(hora; 시간)?’한다.
나는‘뜨레스 델 라 따르데(오후 3시)’하고 답하니 다시 역무원이 ‘오이(hoy; 오늘)?’한다.
나는‘시(si; 예)’하고 대꾸했다.
처음으로 스페인어로만 대화했는데, 정말이지 난 이런 단답형 대화가 참 좋았다.

15:00 세비야로 되돌아가는 열차는 정확히 제시간에 출발했다. 지금껏 이동중에 졸았던 적이 없는데 오늘은 20여분 졸았다.

16:30 세비야 산타 후스타역에 도착해서는 21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복귀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버스가 운행중인데도 17:00가 되니 운전기사가 바뀐다.

숙소에서 씻고 저녁을 먹으려고 다시 나갔다. 오며가며 눈에 확 띄던 버거킹으로 가서 커다란 햄버거와 콜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값(5.2유로)도 엄청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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