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목)

어제도 일찍 잠든 탓에 03:00 좀 넘어 잠이 깨서 더 자기는 틀렸고, 가방을 좀 정리하다가 05:00경 누군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 그 사람이 샤워를 끝내자말자 뒤이어 나도 샤워를 했다.

07:45 대충 차려 입고 나서 이 숙소에서 준비한 조식이 어떨까 하는 기대감에 서둘러 지정된 그 식당을 찾아갔다.

<식사 주문서 ; 2장중 1장은 사용하지도 못했다.>

08:00부터 배식 가능하다고 했지만 좀 더 이르게 도착해서 그 교회처럼 생긴 건물의 지하층도 둘러보며 시간을 좀 죽였다.

<내가 식사를 한 식당 코너>
<지하층에도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08:00를 넘기자 그 식당 –포장마차 같은– 에 가서 자리를 접고 앉아서 미리 작성한 주문서를 내밀었더니 12~3센티의 딱딱한 바게뜨 빵 2조각에 버터조각 1, 딸기잼 1, 물 1컵, 그리고 이름 모를 음료 1컵, 오렌지 쥬스 1컵이 차려져 나왔다.
내가 주문한 것은 메인이 토스트였는데, 여기서 가장 괴리가 커졌다. 다만 음료는 마실만 했다.
그것 참...
그나마 내일은 공항 가는 시간(06:30) 때문에 그마저도 못먹으니 또 6유로 날릴 수밖에 없다.

<이 엉성한 식사가 6유로라니...>

08:10 하여간 얼른 식사를 끝내고 원래 계획보다 20분 일찍 나의 일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95번 버스에 얼마를, 어떻게 지불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정류소에서 옆의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차비는 1.5유로란다. 그리고는 큰 실수를 했다는 듯이 정류소 칸막이에 붙은 홍보지를 가리키며 카드로 지불하면 1.28유로 라고 성심껏 설명해준다.
그 아주머니가 다른 버스에 오를 때 "부엔 디아" 하고 인사했더니 '그라시아스'라며 웃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불방법이 궁금해서 다시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차를 기다리는 청년에게 인근에 교통권 판매하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망설이는 듯 하다 버스 안에서 지불하면 된단다.
처음엔 '부스'라 해서 교통권 판매 부스를 말하나 했는데 버스를 말한다는 것을 좀 있다 알아차렸다.
그가 말한 부스는 Bus였던 것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 영어 발음은 좀 별로이긴 했다.
그때까지의 생각으로는...

다음에는 두어번 흘려보낸 95번 버스를 기다리는 것. 우리나라처럼 다가오는 버스 번호와 도착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는데, 5분후, 3분후 하더니 proxim 하고 바뀌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두어번 그랬다.

08:50 드디어 95번이 다가오길래 나도 다른 사람처럼 택시 잡듯이 손을 들어 탑승 의사를 보이니 버스가 선다. 계획보다 20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싶었던 것이 오히려 20분 늦게 시작하는 꼴이 되었다.
1.5유로를 운전기사의 손에 건네고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몇 정거장 더 가서 주변 모습만 보고 성급히 내리다 보니 한구간 앞에 내렸다.
오늘도 많이 걸을 팔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09:20부터 걷기 시작해서 좀 지나니 거대하고 멋진 건축물들이 나란히 지어져 있는 곳, 과학단지가 눈앞에 다가왔다. 중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많이들 도착하고 있다.
버스로 한두대도 아니고 7~8대가 도착하고 있었다. 그 틈에서 나는 역방향으로 지나가며 사진을 찍었다.

<고래처럼 생긴 이 건물은 레이나 소피아여왕 예술회관>

<이 건물은 아이맥스 극장>
<이 큰 그림자는 이 뒤에도 큰 건물이 있다는 것>
<왼쪽 건물은 펠리페왕자 과학박물관>

<무슨 이벤트홀이라는데...>


10:00 하천 건너까지 걸어가서 발렌시아 구도심으로 가려고 94번 버스를 한참 기다려서 탔다.
이번에도 1.5유로를 내고 뒤도 안돌아보고 안쪽으로 갔는데 뒤에 탄 아주머니가 뭐라면서 영수증을 건네준다. 스페인에서는 현금을 운전기사에게 직접 지불하면 영수증을 발급하는 곳이 많은 것 같다.

10:20 레알공원 근처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세라노탑 앞에 도착했다. 내 발목 컨디션으로는 계단을 오르내릴 형편이 안되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탑이라 입장권을 사서 탑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발목이 아파 후회가 될 정도로 힘들었다.

<세라노탑과 옥상에서 바라본 발렌시아 시가지>


거기서 조금 이동하니 바로 구시가지였다. 우선 발렌시아대성당 위치를 검색하고 부근의 식당을 가서 빠에야의 고장에서 먹어보는 맛이 어떨까 싶어 해물 빠에야를 주문했다.
빠에야는 원래 2인분이 기본이라 해서 종업원에게 두번이나 확인해가며 주문했다. 생수 한병까지 겻들여... 15.7유로.
발렌시아가 빠에야의 본향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 이후 어디에서도 이곳만큼의 빠에야 맛을 보지 못했다.


13:30 드디어 발렌시아대성당을 들어갔다. 내가 계획단계에서 발렌시아를 굳이 포함시킨 첫번째 이유는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에 쓰였다는 성배를 보기 위해서다.

<유뚝 솟은 미켈레테탑과 성당 건물>

성당 안에 들어가서도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오직 성배부터 찾았다.
성배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성배의 진실에 약간의 의구심을 품어서일까, 사진이 옳게 찍히지 않았다.

<조~기 안에 있는 잔이 성배라고 한다>

그리고 발목 때문이지만 성당에 붙어 있는 미켈레테탑은 올라가보지도 못했다.
성배를 본 이후 다른 장식물들을 구경하다 밖으로 나와 레이나광장을 경유, 주변을 돌아보며 걸었다.

15:00 둥글게 생긴 Redona광장시장에 도착, 한바퀴 돌면서 진열 상품들을 구경하며 빠져나와 론하(Ronja)를 들렀다가 발렌시아 중앙시장 앞을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중앙시장은 공사중으로 문을 다 잠가놓아 안을 보지 못했다.
그나저나 구시가지 쪽 거리에 즐비한 건물들은 유명하건 아니건 모두 역사가 있는 것 같고, 품위가 있어 보였다.
16:20 걸어서 돌아다니다 보니 발목도 아프고, 배도 고파져서 숙소로 향했다.
물론 아프지만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두발로 걸어서...

17:00 숙소에 도착해서 프런터 직원에게 ‘근처에 세탁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 빨랫거리를 모아서 들고 갔는데, 영어가 안통하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이라 처음으로 비싸게 주고 산 ‘00톡’을 한번 사용했다. 내가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하므로 오늘 안으로 빨래를 해달라고 했더니 난감해 하다 두시간 후에 오란다.
빨랫거리를 맡기고 저녁을 해결하러 주변 거리를 돌아보았다.

<골목 끝에는 언제나 시선을 끄는 피사체가 있어서 굳이 발걸음을 하게 한다>
<별 이름이 없는 건물들도 이방인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17:40 근처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 ‘저 사람들 먹는 것 1인분 달라’고 주문, 이름 모르는 메뉴로 저녁을 간단히 먹고는 근처를 한바퀴 돌며 한참동안 시간을 때우다 아까의 그 세탁소로 가봤더니 할머니가 세탁한 옷들을 일일이 다리미로 말리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인근 마트에 들러 빵 10개와 생수 2통을 사서 물과 빵 5개는 내일 새벽에 내가 먹으려고 챙기고, 빵 5개를 들고 할머니한테 가서 세탁비가 얼마냐고 물으니 13.2유로라는데 15유로를 지불하면서
빵을 몇개 샀는데 좀 먹으라며 건네니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한다. 참 기분 좋은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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