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수)
오늘은 몬세라트를 구경하고 다시 열차편으로 발렌시아까지 가는 날이라 새벽부터 좀 서둘렀다.
어제 저녁을 굶은 터라 다행히 설사는 멈췄다.
06:40 밖은 아직 컴컴한데 짐을 챙겨 프런트에 맡기고 에스파냐광장역으로 가서 복잡한 지하철 통로를 걸으며 안내 표지를 찾고 있는데, 어느 젊은 아가씨가 영어로 ‘도와줄까’며 묻길래 몬세라트로 가는 열차를 타려고 한다니까 마침 자기도 그 방향으로 가니 따라오란다.
호의는 호의로 선선히 받아들여야 되는데, 출국전 하도 소매치기 등등 안좋은 소리를 많이 들은 탓에 고맙다고 인사는 했지만 표정이 떨떠름해 보였는지 그 아가씨는 방향만 가리키고는 총총 가버렸다.
하긴 굳이 사람의 안내가 아니더라도 몬세라트행 전철 안내 표지가 그 방향으로 쭈~욱 붙어 있어서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전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4번 플랫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 열차를 탄 곳은 3번 플랫폼이었다.
우선 R5전철 + 산악열차 + 푸니쿨라 왕복 승차를 위한 몬세라트통합권(승차권)을 샀다.
07:36 출발하는 R5전철을 타고 출발을 했는데, 사위는 깜깜하고 하늘에 달만 휘영청 밝다.
그럭저럭 한참을 가다 보니 그제야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산악열차 타는 역에서 환승을 해야 하니 내릴 역까지 통과할 역의 개수를 세는데, 어디서 오류를 범했는지 한정거장 일찍, 케이블카를 타는 Aeri역에 내려버렸다. 덕분에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꼬박 한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잘못 내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긴 했지만...
새벽부터 부산을 떤 보람이 전혀 없어졌다.
09:50 산악열차를 타고 몬세라트수도원까지 가는데 그 다음역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올라갔다.
그리고 산악열차 구간은 급경사여서 스위스의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산악열차가 생각났다.
산 위에 도착하자말자 나는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을 찾기 위해 무작정 높은 쪽으로 향해 걸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사전에 수집한 정보를 확실히 챙기지 않은 탓에 엉뚱한 곳을 헤매다 겨우 검은 성모상 근접 관람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행렬 끝에 섰으나 11:30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다며 문을 닫는 바람에 돌아서야 했다.
오후에 다시 검은 성모상을 관람할 기회는 있지만 오늘 발렌시아까지 가는 열차를 타야 해서 포기하고 다음 계획인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푸니쿨라 타는 곳으로 갔는데, 여기도 줄 길이가 만만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올라타고 산 위로 올라갔다.
산 정상이라 해서 뭐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둘러 선 기암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본 바탕이 자갈 화석이 박혀 있는 퇴적암인데 우뚝 우뚝 솟은 기암들은 전부 화강암이다.
아마 퇴적암지대에 용암이 뚫고 올라온 모양이다.
11:40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산을 내려와 몬세라트수도원 지역을 더 둘러보다 12:15 하행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와 정거장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리다린 끝에 13:15 R5열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14:30 바르셀로나 스페인광장에 도착, 숙소로 걸어가는 도중에 일본식 분식집이 보이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망설임 없이 들어가 소카라멘과 네스티를 주문해서 먹었다.
평소 일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네들의 라멘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궁금해서 주문했는데, 돼지 앞다리살 편육 서너점을 곁들인 우동이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일본인 같은 젊은 주인에게 ‘델리시오소스(맛있다)’고 해주었다.
15:00 숙소에서 아침에 맡긴 가방을 회수하여 Sants역으로 가기 위해 스페인광장까지 도보로 이동해서는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서 2구간만 가면 되는 전철을 기다렸는데, 안내판에 5분 후에 온다고 표시가 뜨더니 시간이 되니 다시 19분 후에 도착한다고 뜬다.
두세번 속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여유시간이 15분밖에 안남았는데 안내판에는 또다시 5분후에 도착한다고 뜬다. 정말 5분후에 전철이 오면 괜챦지만 그렇지 않으면... 갈등하다 전철을 포기하고 육상으로 뛰어 올라와 도로를 무단횡단해가며 택시를 잡아타고 ‘16:00 렌페열차를 타야 하니 산츠역까지 빨리 좀 가자’고 했다.
역에 도착하니 열차 출발 5분전이라 무작정 뛰어들어가 경찰한테 ‘발렌시아행 렌페열차 타는 곳이 어디냐’고 두 번을 물어서 개찰구에 도착했는데 역무원들이 개찰구를 막 닫다가 내가 헐레벌떡 뒤어와 e티켓을 보여주니 다시 열어주었다. 열차에 올라타자 바로 출발했으니 얼마나 긴박했을까...
열차 안에서 구글지도를 열어 숙소에서 산츠역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하고 봤더니 글쎄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거리를 50여분이나 걸려.. 택시비 7유로(사실 10유로 지불) 들여...
하여간 속상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스페인의 카탈루냐지방 독립을 요구하는 소요사태가 발생, 전철 근로자들의 파업 때문에 전철이 제대로 운행되지 않았을 거란다.
거기서 내가 느낀 것은 ‘여유가 많다고 생각될 때를 경계하라. 그리고 미리 여유있게 마지노선을 설정해두고 그 시점까지 도달하기 전에 현실성이 높은 대안을 선정하라. 특히 내 다리는 가장 믿을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세시간여 동안 스페인이 자랑한다는 렌페열차를 타고 지중해 연안을 달리는데, 우리나라 열차에 비해
객차 1량의 길이가 짧지만 좌석간 넓이는 더 넓어서 편하다.
그리고 저속으로 달릴 때도 있었지만 고속으로 주행할 때는 우리나라 KTX급인 것 같았다.
스페인의 초고속열차 아베(AVE)도 아닌데 말이지..
19:10 발렌시아 후아킨역에 도착해서 원래 계획대로 10번 버스를 탈까 생각하다 아까 열차 타느라 한바탕 난리를 친 탓에 땀을 많이 흘려 샤워를 빨리 하고 싶은데다 날도 우중충하고 어둑어둑해지는 상황이라 당장 눈에 띄는 택시를 타고 숙소 주소를 보여주며 태워달라고 했다.
19:40 숙소에 도착, 체크인한 뒤 샤워부터 하고 식사를 하려고 이미 어두워진 바깥으로 나갔다.
조금 가다보니 외관은 교회 건물 같은데 안에는 포장마차 수준의 푸드코트였다.
거기서 한참을 둘러 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싫어 더 걷다가 수퍼에서 빵 종류와 쥬스를 사서 숙소로 갖고 들어와 혼자 씹어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는 좀 있다 잠들었다.
'일상 > 여행관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포르투갈 나홀로 자유여행 5 (0) | 2020.05.04 |
---|---|
스페인~포르투갈 나홀로 자유여행 4 (0) | 2020.05.02 |
스페인~포르투갈 나홀로 자유여행 2 (0) | 2020.02.14 |
스페인~포르투갈 나홀로 자유여행 1 (2) | 2020.02.12 |
스페인~포르투갈 나홀로 자유여행 기본계획 (0) | 2020.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