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롭스크


■ 5. 23(수)


o 하바롭스크 도착

   밤 12시 30분에 이르쿠츠크공항을 떠나 3시간 넘게 비행해서 하바롭스크공항에 착륙했다.

   이르쿠츠크 시간이면 새벽 4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 하바롭스크는 6시가 넘었다.

   해를 맞이하며 동쪽으로 비행하다 보니 밤이 무척 짧게 느껴졌다.

   러시아가 남북으로건 동서로건 넓긴 넓다.


   <하바롭스크공항 착륙>


   하바롭스크공항에서 또 한번 각자 급한 볼일들을 보느라 밖으로 나가는 탑승객 행렬을 놓치고

   출구를 못찾아 우왕좌왕했다.

   한참 헤매다 짧은 러시아어 실력으로 어느 공항 근무자에게 '그제 븨하트?'(출구 어디?) 라고 물어

   손가락질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서야 겨우 찾아 나왔다.


   그리고는 미리 확인해둔대로 35번 버스를 타고 하바롭스크역으로 이동했다.

   구글지도에서는 버스요금이 25루불이라고 읽었는데, 23루불이란다.

   차장 아줌마가 차비를 걷는 광경을 거진 50년만에 보니 많이 낯설다.


o 숙소 체크인

   역전 정류장에 내려서는 구글지도를 바이블로 여기며 길을 따라가니 숙소 건물은 쉽게 찾았지만

   출입문를 찾느라 약간 헤맸다.

   하필 그 타이밍에 숙소 종업원인 듯한 두 젊은이가 뒷문으로 나오는 걸 본 터라 거기가

   출입문인 줄 알고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중 막내가 건물벽에 붙은 화살표를 보고 저쪽으로 따라가자고 해서 가보니 반대편에

   출입문이 있었다.

   벨을 누르고 나서 '누구냐'며 러시아어로 물을까봐 조마조마한데, 말없이 철문이 '철커덩'하고

   열려서 짐들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러시아에 와서 보니 호스텔들은 체크인 시간을 명확하게 정하지는 않는가 보다.

   예약확인서를 내미니 그 이른 시간에 바로 체크인하고 방을 배정해주었다.


   여기서 좀 이상한 것은 여권들을 다 내놓으라 해서 제출하니 컴퓨터로 뭔가 등록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세명 다 처리하면 약 30분 걸린단다.

   그게 '거주지등록(레기스뜨라짜)'이 아닌가 생각은 드는데, 물어볼 수도 없고 잠자코

   따르기만 했다.

   '레기스뜨라짜'라 해도 신기한 것이 우리가 러시아에 입국한지 1주일째가 된 걸 어떻게 알고

   처리할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숙소 캐비닛에 각자 짐을 챙기고는 '일단 한숨 자자'고 하고서는 셋 다 침대에 누워

   잠부터 잤다.



o 하바롭스크 1일차 투어 출발

   3시간 정도 자고나니 다들 생기가 좀 돌아온 것 같아서 투어를 나가기로 했다.

   11시경 하바롭스크역 앞으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잘안보인다.

   택시표지등 없이 대기하고 있는 차에 다가가 구글지도로 아무르강변공원을 보여주니 타란다.



   그런데 택시가 가는 방향이 좀 엉터리다.

   서쪽으로 쭉 나갔다가 남서향으로 가는데, 내가 그동안 구글지도랑 씨름하면서 익혀온 방향감각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1만원 이내 요금이라 아무말 하지 않고 운전기사가 가는대로 내버려두었다.

   따질 능력도 없지만...

   어쨌거나 20여분후에 아무르강변에 내렸는데, 무슨 공원 같기는 하지만 거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 갑자기 바람이 세지더니 이어서 비까지 뿌린다.


   부랴부랴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큰 집도 아니고 그저 조그만 컨테이너하우스다.

   몇가지 시켜먹고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박물관과 놀이공원이 있었다.

   박물관은 봐도 잘모르니까 내부는 포기하고 외부에서만 돌며 사진을 찍다 통과했고, 놀이공원에는

   대관람차가 있길래 그걸 타면 하바롭스크 시내 전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1인당 200루불을

   지불하고 올라탔다.

   우리가 탄 캡슐이 맨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하바롭스크 시내가 훤히 다 보였다.



   하바롭스크는 이르쿠츠크와 비슷하게 인구는 약 60만명 정도라는데, 시가지 모습이나 분위기는

   좀 다르다.

   이르쿠츠크는 도시가 형성된지도 제법 오래 된데다 도시 형성 초창기 유적들이 많아 이래저래

   개발이 많이 제한된 반면, 하바롭스크는 그런 제약이 적다 보니 마음껏 개발한 것 같다는 인상을

   짙게 받았다.

   쉽게 말해 이르쿠츠크에 비해 신식 고층건물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하여간 우리는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o 아무르강 전망대

   가다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서 별 생각없이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 아무르강 전망대가 나왔다.

   거기서 사진을 좀 찍다 그들과 헤어지고 다시 동쪽으로 걸었다.






   하바롭스크는 아무르스키거리를 중심으로 남서/동북 방향으로 평행되게 두개의 큰 도로가 있는데,


   위성지도로 볼 때는 몰랐지만 동서방향으로 심한 오르막 내리막길이어서 사실 실거리에 비해

   걷기에 조금 힘이 들기도 했다.



o 러시아동방정교회

   한참을 걷다보니 눈앞에 휘황찬란한 건축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러시아 동방정교회다.


   <아름다운 교회>


   이거다 싶어 사진을 좀 찍으려니까 또다시 비바람이 몰아친다.

   얼른 몇장 찍고 가려는데, 거기서 또다른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만났다.



   20대 후반의 가이드와 몇마디 나누다 서로 여행 잘하라는 덕담을 교환하고 헤어졌다.


   오늘은 날씨가 안좋아 더 이상 투어를 계속한다는 것이 조금 무리인 것 같아서 일찍 숙소에 들어가

   보드카나 한잔 하고 쉬는 것으로 날궂이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세시간 잤다고는 하지만 밤 12시 반에 비행기를 타서 세시간 비행하고 왔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o 한국 음식점

   그렇게 결정하고 가까운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1번 버스를 탔다.

   구글지도로 숙소와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반가운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꼬레야'...


   <꼬레야 카페 간판>


   하도 반가워 무작정 들어가 메뉴판을 봤더니 정말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주인이나 종업원중 한국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술안주가 될만한 한식 메뉴와 함께 보드카 한병을 시켜서 배불리 잘먹고 숙소로 귀환했다.

   그런데 이를 어째, 술이 모자라니...

   그래서 내가 밖으로 나가 역 앞의 제법 큰 슈퍼에 가서 보드카 두병과 안주꺼리를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걸 짧은 시간에 다 마셔버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막내가 술을 더 사온다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후에는 술 마신 이야기뿐이므로 생략...




■ 5. 24(목)


o 하바롭스크 중앙시장

   조금 취기가 남았지만 그런대로 컨디션은 괜챦은 것 같아서 대충 해장한 다음 아무르스키거리를

   왕복 답사하기로 하고 각자 짐을 숙소 프런트에 맡기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르쿠츠크와는 달리 반나절 짐을 맡기는데도 600루불인가를 내란다.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이 집이 문제가 아니라 공짜로 하루반 동안 짐을 맡아준 이르쿠츠크의

   그 숙소가 이상한 거라며 애써 자위했다.


   그리고 역전 정류장에 나갔다가 하바롭스크에서도 전차를 타보자면서 아무거나 탔더니 조금 가다

   종점이라며 내리란다.

   헛웃음을 지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주위를 살피다 바로 옆에 큰 시장이 있는 것을 알았다.

   거기로 들어갔는데, 처음엔 노천시장만 있는줄 알았더니 안으로 갈수록 더 큰 건물이 나와

   하바롭스크 중앙시장인지는 모르지만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큰 시장임을 짐작케 했다.





o 레닌광장

   시장 구경은 어지간히 했으니 이제는 정말 정해진 코스대로 투어를 하자며 구글지도를 열어

   갈 길을 가늠했다.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라 버스를 타고 가서 아무르스키거리 입구에 내렸다.

   거기에는 상당히 넓은 레닌광장이 있고, 하바롭스크시의 무슨 1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준비가

   한창이었다.





   <16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중인 레닌광장>



o 아무르스키거리

   레닌광장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아무르스키거리이다.

   그 길의 결대로 끝까지 걸으면 아무르강이 나온다.


   <아무르스키거리를 배경으로 둘째가..>



   <유서가 깃든 집이라며 부착해둔 누군가의 조소상; 뽀드가예프가 누군지?>






   <아무르스키거리의 끝, 꼼소몰광장>


   이르쿠츠크도 그렇지만 하바롭스크도 거리의 건물들이 참 이쁘다.

   그게 옛날집이든 신식 건물이든...

   그리고 거리가 넓고 깨끗하다.

   게다가 교회 건물은 주위 어떤 건물보다 무조건 아름답다.


   <꼼소몰광장 옆에 위치한 성모승천교회>


   <좀 떨어진 곳에서 봐도 아름답다>


o K식당에서 점심을...

   아무르스키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답사하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점심식사 시간이 닥쳤다.

   그래서 여행 떠나기전부터 미리 점 찍어둔 K식당으로 향했다.



   <전채 - 다른 곳과 달리 무료>


   좀 어두운 느낌은 있지만 내부 인테리어가 차분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그리고 직원들은 상냥하고 친절했다.

   말이 안통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바로 옆자리의 독일사람(船員)이 영어로 자기네들 먹고 있는게

   아주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전까지 지목한 요리를 취소하고, 손짓 발짓 보태서 몽땅 저 사람들 먹는 메뉴로 차려달라고

   했더니 옆자리 손님도, 종업원도 웃는다.





   그렇게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 이번에는 길을 건너 거꾸로 레닌광장 방향으로 걸어 올라갔다.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며 봐도 여전히 거리는 깔끔하고 멋있다.

   걷다가 조금 힘이 들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기로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반가운 차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차들은 한글을 일부러 지우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글을 또 하나의 디자인으로 생각한다나...


   <우리나라 진주에서 굴리던 버스라는데...>


   <지리산 한화리조트에서 운행하던 회사차도...>


o 시베리아횡단철도(TSR) 탑승

   그렇게 오후 5시쯤 숙소로 돌아와서는 프런트 옆 귀퉁이에 쌓여 천대받고 있던 우리 짐들을 찾아서

   바로 옆에 있는 하바롭스크역으로 갔다.




   따라만 오는 아우들은 표정들이 태평스러운데 나는 또다시 스트레스 구덩이에 빠져든다.

   이놈의 종이쪼가리(예매확인서)로 기차를 탈 수 있을까? 

   기차표를 발매하는 창구는 어디일까?

   기차를 타러 들어가는 개찰구는 어디일까?

   이런저런 걱정과 함께 역사 안에서 한시간여를 기다리다 아우들은 대합실 그자리에 있으라 하고는

   나 혼자 우리가 탈 기차표를 발매하는 창구를 찾아 역사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느 한곳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예매확인서 석장을 모두 내미니까 확인서의 바코드를 한번 주욱~

   스캔하더니 단번에 기차표 석장을 뽑아서 내준다.

   그 여성 역무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렇게 쉽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기다리는 아우들에게 가서 자랑스럽게 표를 흔들며 각자 자기표를 나눠줬다.


   <모스크바 기준시각 13:50발 상당히 고급인 006열차의 5번 객차, 5~7번석, 아랫층 요금 3555루불 등 표기>


   그리고 다시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로 고민하다 그 때까지 그다지 배가 고프지도 않으니

   원래 의도했던대로 웬만하면 열차식당에서 식사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여기서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마지막 관문은 개찰구가 어디냐 이다.

   1층으로는 탑승객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하에도 가보고, 윗층으로 가봐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또다시 구글번역기를 동원, '이 표로 기차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역무원 한사람에게 내보였다.

   그러자 역무원과 경찰 등 서너명이 모여 이러쿵저러쿵 한참을 떠들더니 자그마한 여성 역무원이

   자기를 따라 오라는 시늉을 해서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가면서 '조선?'하고 묻길래 '녜트(No), 사우스 코리아'라며 露語와 영어를 섞어 답했다.

   철로를 가로지르는 가교를 가리키며 '저기로 가라'는 시늉을 대충 알아듣고 '스빠시바'하며 사의를

   표하고는 다시 아우들한테 돌아와 '기차는 나가서 저 옆쪽에서 탄단다' 하니 믿지를 않는다.

   그러던중 어제 만났던 한국인 관광객을 다시 만나 아우들이 이사람들의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밖으로 나가서 타는 것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화살표 방향이 개찰구로 향하는 길>


   <무거운 가방을 들고 3층 높이의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고역>


   <역사 뒷편으로 내려다 보인는 철로>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짐을 들고 역사 밖으로 나와 예의 가교를 올라가 개찰을 기다렸다.

   좀 있으니 열차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오는데, 기다리던 승객들이 동요하길래 우리가 탈 기차이구나

   생각되었다.

   내가 앞서고 아우들이 뒤따르며 긴 계단을 내려가 5호차 앞에서 열차표와 여권을 대조하는

   차장과 마주하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난관이 닥칠까.. 싶어 긴장하며 여권과 열차표를 내밀었더니

   차장이 표정 변화 없이 표만 챙기고 패스시킨다.(기차표는 내리기 얼마전에 돌려줌)

   아! 이번에도 별일 없구나...

   이런 몇가지 증상으로 미루어 내가 괜히 별일 아닌데도 걱정부터 하는 그런 체질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 자리인 5~7번석을 찾아 짐부터 내려놓고 한숨 돌리다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가

   차장에게 뭔가 먹을 걸 파는가 궁금해서 가봤더니 4각바구니에 쵸코파이 같은게 보이길래

   집으려 하는데 아까 만났던 한국인 가이드가 지나가다 웃으며 '아니, 아니' 한다.

   그러니까 차장이 다른 바구니를 꺼내는데 거기에는 각종 기념품이 있었다.

   그 바구니에서 볼펜과 열쇠고리, 문진 한개씩을 약 600루불을 주고 샀는데, 둘째 아우가 자기도

   같은 걸로 사겠단다.

   볼펜은 물건이 없어 바로 못샀는데, 차장이 곧 가져다주겠다길래 좀 기다리니 더 비싼 볼펜 한자루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차장에게 이렇게 물건을 사는 것은 열차내 생활을 위해 대단히 유용한 아부라고 하더니

   정말인 것 같다.



   우리 방에서 8번석 한자리가 비어서 언제 누가 탈까 궁금해했는데, 끝내 아무도 타지 않아 우리끼리

   블라디보스톡까지 편하게 여행했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칸으로 갔는데, 그다지 넓지 않은 식당칸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자리가 없다.

   '테이크 아웃(되니)?' 하고 물으니 대충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메뉴를 고르려고 메뉴판을 한참 보고 있는데, 자리가 하나 났다.

   종업원에게 '앉아도 되냐'라는 의미로 그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얼씨구나 하고 셋이 앉아서 연어요리와 이름 모르는 식사꺼리, 그리고 보드카 한병을 주문했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음식의 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둘째가 같은 메뉴, 같은 양으로 한번 더

   주문하겠다며 다시 한번 주문했다.


   <열차식당에서..>


   그렇게 시베리아횡단철도 안에서 여행 9박째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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