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아침...

일어나 거실에 커텐을 새로 달고, 화분 정리 좀 하면서 생색을 내고 보니

가장으로서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자부심이 천정부지다. 

 

자신만만하게 내 방의 낚시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를 보고

"낚시가려고?" 하고 묻는다.

 

심드렁하게 "응" 대답하고서는 이미 시간이 많이 늦은 편이라 재빨리

가벼운 낚시채비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낚시터가 아니면 갈 곳이 없을 것 같은 동료에게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탑정지 상류쪽에 있다'고 한다.

 

혹시나 산란기를 맞아 월척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까.. 싶은 기대에 부풀어

낚시점 들러 지렁이 한 통 사들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오늘따라 차 성능이 아주 좋은 것 같다.

별로 밟지도 않았는데, 금방 110km를 넘는다.

 

 

도착과 동시에 "좀 나오냐?"고 물었더니 입질을 전혀 못받았단다.

에고~~ 싶다가도 '그럼 어때, 바람이나 쐬지 뭐'라고 소심하게 졸장부다운

생각이 절로 생긴다.

 

마침 바람까지 억수로 세게 불어주어 내가 의도한 바람 쐬는 일은

멋진 자동빵이 되었다.

 

날씨도 오늘은 내 편인 것 같다.

 

그런데 내 의도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너무 오버한다.

 

물결 수준이 아니라 파도가 친다.

사진만으로는 아마 바다낚시하는 줄 알거다.

 

 

일단 낚시여건이 그런 만큼 2.4대, 2.8대, 3.2대로 3대만 폈다.

수심은 1m 40cm...

 

집을 나오면서부터 대물가방에서 추려놓은 자수정 드림대는 모두 빼고

가벼운 풍운대만 갖고 나왔으므로 대물은 아예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풍운대를 펴 보니 채비가 전부 외바늘이다.

2.8대는 본래 옥수수내림채비였으나 며칠전 공주 중흥지에서 수몰나무에 걸려

바늘 하나를 잃는 바람에 저절로 외바늘 채비가 되었고... 

 

 

낚싯대를 펴고 있는데 벌써 언 놈이 입질을 한다.

2.8대를 펴느라 두 손이 바쁜 상황에 3.2대 찌가 솟구치고 있다.

 

'이것 봐라...오늘 어쩌면 대박 날 수도 있겠다'고 잔뜩 기대하면서 잡아챘다.

그런데, 괴기 모양이 어째 이러냐? 색깔과 무늬는 좋은데...

 

대략 너댓치되는 블루길이다.

하도 오랜만에 블루길을 만났더니 얼굴을 얼른 못알아 봤다.

 

 

그런데, 나머지 2.4대까지 다 피고나니 그 때부터 이놈의 블루길들이 잡조사를

제대로 알아 모시려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정도로 인식을 하나 보다...

 

10m 정도 옆에 앉은 동료(지난 주 월척 1수)에게는 전혀 입질도 않으면서

나한테만 물어주고 있으니...

 

4치부터 8치까지 골고루 올라온다.

탑정지가 본향인 블루길 일가 친척이 오늘 뭔가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유해어종은 퇴치해야된다는 정부 방침에 충실한 바른 생활의 사나이, 나한테

걸리면 불문곡직 전원 즉결처분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위 유해어종을 즉결처분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인데, 어째 좀 으시시하네...ㅎ>

 

하여간 입질하는 족족 부지런히 챔질을 했다.

오늘은 블루길 퇴치의 날이다..라고 마음먹으니 자주 물어주는 블루길한테

고맙기도 하고 심심하지 않기도 해서 좋다.

 

시종 떡밥은 갤 생각도 않고 지렁이만 달아서 넣었다.

몽땅 블루길로만 씨알이 커졌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그 중 8치 정도 되는 놈은 힘이 좋아 3.2대가 벅차다.

휘어져서 발 앞의 수몰나무 가지를 넘겨서 들어올리기가 만만치 않다.

 

올라오는 대로 앉은 앉은 자리 뒤에 있는 밭에다 던졌는데, 일어서면서 보니

블루길 공동묘지가 되었다.

 

총 열다섯마리를 퇴치했다.<다 파묻었음.>

 

살생했다는 죄의식보다 법을 따랐다는 준법의식이 더 강한 나다.

부디 나를 원망말고 좋은 세상에 가서 붕어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오후 5시가 넘으니 해가 기울면서 조금 추워진다.

한번도 입질을 못본 동료는 철수 희망을 담아 언제 갈거냐고 물어보지..

그래, 가자!! 어차피 밤낚시할 생각도 없었던 것 아닌가...

 

짐을 챙기면서 바로 옆을 보니 조그만 떡잎의 식물이 돋아나고 있다.

저 놈이 나중에 낚시할 때 걸리적거리는 잡풀일지도 모르지만 떡잎은

그래도 귀엽다.

 

저런 미물도 알아서 기지개를 켜니 바야흐로 봄은 봄인가 보다.

 

 

'낚시 > 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박한 꾼들...  (0) 2010.07.12
개꿈...  (0) 2010.03.25
3.15~16 휴가중 출조  (0) 2010.03.19
2010-03-06 논산 상월지역  (0) 2010.03.18
올해 첫 붕어낚시  (0) 2010.02.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