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쿠츠크 성지순례 |
■ 5. 19(토)
o 출발
어제 숙소에서 나갈 때 휴게실에 온갖 간식자재가 가득 차있는 걸 봤기 때문에 계획과는 달리
숙소 복귀때 아침식사 꺼리를 사지 않았다.
대신 오늘 아침에 숙소 종업원에게 얘기해서 우리나라 팔도라면에서 생산한 도시락라면 세가지와
러시아산 만두를 사서 라면은 커피 포트의 끓는 물을 붓고, 만두는 별도로 냄비에 삶아서 먹는데
그 양이랑 맛이 정말 수준급이다.
러시아에 대한 호감이 생겨서 그런가?
그리고, 간밤에 마신 보드카의 양이 적지 않은데, 머리도 안아프고 속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앞으로 보드카를 정말 좋아할 것 같다.
<세가지 맛이 있는데, 우리 입맛에는 매운 맛 라면이 가장 잘맞았다. 러시아어 큰 글자 발음이 '도시락'이다>
o 이르쿠츠크 주정부 청사 방면으로...
아침을 시원하게 해결한 후 원래 계획은 즈나멘스키수도원에서부터 시작해서 키로프광장쪽으로
내려오며 투어를 진행하기로 했으나 계획과는 반대로 키로프광장쪽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유는 따로 없고, 사실은 교통편이 불안해서다.
어제와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90번 버스를 타고 어제 낮에 내린 곳까지 가서 즈나멘스키수도원까지
가는 트램(전차형버스)을 타야 하는데, 정확히 어디서 환승해야 하는지 잘몰라서 내린 김에
가까운 키로프광장부터 걸어가서 북쪽으로 훑으며 투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궂다.
비가 오면서 기온도 낮은데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어 춥기까지 하다.
사회주의 국가 시절 국민 사상교육 차원에서 동상을 많이 세웠는가 보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전쟁영웅뿐 아니라 소방수들도 뭔가 스토리를 엮어서 동상을 세우긴 했는데,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인근에 불에 탄 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동상의 의미가 조금 무색해진다.
비가 조금 흩뿌리기는 하지만 걸어서 키로프광장까지 왔다.
<키로프광장과 주정부 청사>
키로프광장은 별로 볼게 없다.
더구나 우리가 갔을 때 그제서야 노점상들이 전을 피고 있었다.
거기에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추운데 분수를 쏘아올리는 그 심사를 알 수가 없다.
주정부청사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구세주교회가 있다.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러시아의 종교적 상징답게 쉬워 보이지 않는 위엄이 서려 있다.
그 옆에는 또 무슨 동상이 있는데, 모 선교사像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어서 그 옆에 보고야블레니야(보고야블렌스키)성당이 있다.
이곳은 구세주교회에 비해 외관이 많이 화려하다.
그리고 인접하여 로마 카톨릭 성당도 있지만 우리 눈에 너무 익숙하여 소개를 생략한다.
주정부 청사 뒤로 영원의 불꽃이며, 모 장군 동상 등등을 둘러보고 세찬 바람에 힘들어하면서도
오늘 계획한 바는 모두 이루리라 다짐하고 앙가라강을 따라 북상하기 시작했다.
<앙가라강... 사진만으로도 추워보인다>
o 모스크바게이트
가는 길에 나오는 모스크바게이트, 예전에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관문이었다는데...
<모스크바게이트 앞에서 막내와...>
o 즈나멘스키수도원
모스크바게이트를 지나 추위에 맞서 꾸준히 걷다 보니 저 앞에 수도원과 붙어 있는 교회가 보인다.
그런데 강변 소로를 따라가다 보니, 갑자기 길이 없어졌다.
할 수 없이 러시아에서 배운대로 차도를 무단횡단했다.
무단횡단도 처음 할 때는 눈치가 보이더니 몇번 하니까 이력이 쌓여 그런지 점점 가책이 없어진다.
입구를 찾아가니 우선 보이는 것이 콜챠크제독 동상
<콜챠크제독 동상 앞에서...>
볼쉐비키의 赤軍에 맞서 러시아황실을 지키고자 白軍을 지휘한 마지막 지휘관, 콜챠크제독...
赤白내전에서 패하고 얼어붙은 앙가라강 위에서 총살당했으나 누구 하나 시신을 거두어 주는 이도
없었다고...
그런 悲史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가 '제독의 연인'이라지...
<즈나멘스키수도원 입구>
교회 안에 들어가니 예배가 진행중인 것 같아 조용히 구경만 하다 돌아나왔다.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정교도 분위기는 사뭇 엄숙하다.
어둑어둑한 실내에 장중한 음악은 아무리 비신자이더라도 누군가로부터 설득당하는 느낌이다.
<어느 건물이 수도원이고, 뭐가 그리스정교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즈나멘스키수도원 안에는 묘지들이 여럿 있는데, 러시아황실 역사에 관계된 인사들과
그 부인들의 묘지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 안의 묘지들을 구체적으로 모두 밝히려면 다시 인터넷을 뒤져 공부를 해야 하니
그냥 덮어두고 넘어간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중 보인 통나무집 공사현장>
o 점심식사
수도원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데,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버스가 안보인다.
지리공부를 한 방향만 한 터라 투어코스를 거꾸로 돌리니 소위 '멘붕'이 온 것이다.
그냥 아직 타보지 않은 트램(전차형 버스)을 타보자며 일단 올라타서 요금부터 살피니 15루불이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전차도 15루불이라니까 아마 전기로 가는 대중교통수단은 15루불이고,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버스는 25루불로 책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단 130지구로 다시 가서 여행 출발 전에 점찍어둔 K식당을 찾았다.
고기에 조금 질린 처지라 생선요리를 주문했다.
본요리에 앞서 밑반찬인지 전채인지 나오는데, 생선류를 소금에 절인 것들이다.
비린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 우리 일행들의 입맛에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식당 앞에서 한컷>
o 카잔성당
점심식사를 맛있게 한 다음 날도 춥고,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 오늘은 일찍 숙소로 돌아가
술이나 마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버스를 타고 가던중 저멀리 카잔성당이 보인다.
아우들에게 다급하게 바로 다음 정류소에서 내리자 해서 후다닥 내렸다.
<다가갈수록 가까워지는 카잔성당...>
<성모자상과 독수리, 비사상..>
안에 들어가니 관광객들 십수명이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우리도 다가가서 정면을 둘러보다가
아우들에게 좀 빨리 나가자고 했다.
성당의 장중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가슴이 쿵쾅 뛰고, 눈물이 나려 해서...
종교와 담을 쌓은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 내 가슴 한구석에 신심이 남아있었는가.. 싶다.
카잔성당은 사실 내일(5. 20) 방문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버스 타고 가다 눈에 띄어 갑자기 들르게 되었는데, 기왕 이리 되었으니 내일 계획된 일정을 앞당겨
오늘 모두 소화하고, 내일은 예비일로 하여 이르쿠츠크에서 혹시 누락된 곳이 있으면 채우기로 했다.
o 데카브리스트박물관, 발콘스키의 집, 동방졍교회
그 사이에 날씨가 많이 좋아져서 걷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카잔성당에서 1.2km를 걸어서
데카브리스트박물관과 발콘스키의 집, 동방정교회를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가 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 외에는 유적지라고 볼만한 곳이 없었다.
여태 꼼꼼히 체크해가면서 어느 한곳도 빠트리지 않았는데, 예서부터 조금 흐트러진 것 같다.
o 중앙시장
이르쿠츠크市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틀치 투어 목록을
오늘 하루에 다 충족시키고도 시간이 조금 남는다.
그래서 그때까지 안타본 전차를 타보기로 하고 전차편으로 중앙시장까지 갔다.
<전차는 생김새도 뭉툭한데 우습지만 굴러가는 소리는 탱크 같다>
우선 노천시장 부분을 훑어보다 상술이 좋은 젊은 과일장수를 만나, 거기서 과일을 4kg 정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상술 좋은 이 친구들...>
숙소로 돌아오면서 주류매장 앞에서 내려 보드카 세병을 사서는 중앙시장에서 산 과일을 씻고 깎고,
치즈와 순록고기를 더하여 오늘도 거하게 한잔 했다.
<남는 과일은 숙소 종업원에게 나누어주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이르쿠츠크의 교회는 거의 다 돌아본 성지순례의 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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