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술 마시고 자고 일어나니 일요일 9시라..얼마 남지 않은 휴일 시간을 아쉬워하며 뭘 할까.. 생각하다가
비록 허접조사지만 꾼한테는 당연히 그거쟎아요... 낚시..<事必歸正 아니 思必歸釣..>
그런데 낚시는 하고 싶지만, 방학이라고 집에 와 있는 딸래미와 놀아준 적도 별로 없고,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줄도
잘 모르다 보니, 한번 출조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라 오늘은 무슨 구실을 갖다 붙일까.. 고민을 한참 했습니다...
<深思熟考..>
그래서 집사람이 아침밥 챙겨 주고, 씻고.. 등등 부지런을 떨며 거실과 안방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눈여겨 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서 아이고~ 나는 낚시나 가야지..하며 변죽을 울리고 집사람의 표정을 살피는데...<左顧右眄..>
평소 같으면 지난 주에 갔다 오고 또 낚시가냐?는 반응이 나올텐데, 웬일로 오늘 신부님 환송 회식이 있어서
성당에서 식사하고 올테니 당신은 딸래미랑 낚시 가서 점심을 사먹든지 하라는 의외의 명령을 하달 받았습니다.
<感之德之..>
불편한 혹(?)이 하나 달리긴 했지만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딸래미한테 오늘은 아빠랑 낚시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자며
달랬는데... 딸래미는 처음에 싫은 상을 짓다가 낚시하다 재미 없으면 생선초밥이나 사먹자 하고 엿 발린 소리를
들이댔더니 그제사 얼굴이 조금 피입니다.<甘言利說..>
갑자기 닥친 행운이 혹시나 망가질까 봐.. 날쌔게 낚시가방 챙기고, 파라솔에.. 딸래미가 앉을 의자까지 들고 내려가
차를 꺼내 현관 앞에 대기시켰습니다.
식구들이 차에 타기가 무섭게 신부님이 기다리신다는 핑계를 내세워 차를 거칠게 몰아 집사람을 성당까지
모셔다(?) 주고......
이번에는 붕어들이 나를 기다릴 것(?) 같아 다시 차를 급히 몰아 김포의 고촌수로로 향했습니다.
<바로 이런 풍경을 보이는 곳...>
고촌수로에 접근하면서 보이는 풍경은 벌써부터 이 환자의 마음을 들뜨게 합디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서 보니 수로의 물이 1미터 가량 빠진 듯 하여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에라~ 예까지 왔으니 대나 담가 보자고 마음 먹은 뒤 받침틀을 꺼내 반쪽만 설치하고 다섯대만 필 요량으로
받침대 다섯개를 꽂고 우선 32대를 펴서 던져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수심이 40센티 밖에 안나오네요...
* 한강 하류의 영향을 받다 보니 간조 때는 물이 많이 빠지나 봅니다.
받침대 설치하기 전에 대를 한번 던져 봐야 되는 건데 마음이 너무 급하다 보니 이런 낭패가... <後悔莫及..>
해서... 대를 더 필까 말까를 고민하다 더 피자는 마음과 때려 치우자는 마음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어정쩡하게
세대를 폈습니다.
나머지 두대도 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안폈지요...
* 대를 걷을 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두 시간여를 앉아 있는데, 햇볕이 얼마나 따가운지.. 물가에 나온 자체가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대물낚시한다고 마음을 굳히고 마련한 채비도 그렇지.. 대낮이지.. 물도 빠졌지.. 그러다 보니 찌는 당연히 말뚝.
하도 심심하니까 건너편에 계신 분의 세치 네치 짜리 붕애 조과도 부러워집디다.
낚시꾼인 내가 그럴진데,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가듯 따라 나온 딸래미는 어떨까.. 싶어 평소의 저 답지 않게
처음으로 딸래미와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 봤습니다.
남자 친구 있냐?(속 뜻은 '찝쩍대는 놈 있냐?')
기숙사 밥은 맛있냐?(밥 좀 적게 쳐먹어라..)
아빠가 뭐 사줄까?(공부나 좀 잘해라, 이년아..)
그런데... 그러면 그렇지 평소의 제 기질이나 화술로는 애당초 잘못된 시도라.. 금방 대화 소재가 바닥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동원된 수법이 사진 찍어줄께..였습니다.
아빠도 하나 찍어 줘봐라...
일케요?
응, 잘 찍었네..(속으로는 '에라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침을 9시 정도에 먹었는데 오후 두시쯤에 벌써 배가 슬슬 고파 옵니다.
낚시는 애시당초 물 건너 간 거고... 가자..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명령을 딸한테 내리고 짐을 꾸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집사람이 딸래미한테 어디냐고 전화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니까 애비를 바꾸라고 하고선 저한테 비빔밥 해 놓을테니 집에서 점심 먹으라고
다시 명령을 합니다.
딸래미랑 초밥 먹기로 약속했는데..라며 좀 버팅기니까 저녁때 식구 모두 나가서 초밥 사먹고, 점심은 집에서
먹으라고 명령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무조건 전화를 끊어버린 채(그러고 나서 무척 겁이 났음) 일단은 딸애한테 잘 보이기 위해 집 근처의 일식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거기 들어가면서 괜히 종업원들의 눈치가 보이데요..
원조교제 커플로 보는 것 같아서...... ㅎㅎ
* 사실 딸래미 키가 172 정도 되는지라 좀....
일단 들어가서 초밥(특)을 주문하고 있으니 집사람이 또 전화를 하네요... 왜 안오냐고...
벌써 먹고 있다니까 갑자기 톤이 높아지면서 얼씨구.. 아예 저녁까지 딸래미랑 사먹든지 말든지 하라며
협박까지 합니다.
나중에는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오늘 점심만큼은 맛있게 먹고 다음에 다시 딸래미랑 낚시 가야지..
싶은 생각에다, 집에 가서 여차하면 간 크게 덤벼볼 심산으로 쐬주까지 한병 시켜서 잘 먹고.....
집에 들어와서는 가급적 집사람과 눈을 안마주치려고 바로 소파에 드러누워 뒤집어져 잤습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더니 집사람과 딸래미가 안보입니다...
아니, 이 예편네(아니 마눌님..)가 정말 화가 나서 딸래미 데리고 가출을 했나... 싶어서 잠시지만
덜컥 겁이 났는데...
일곱시 반쯤 되니 식구들이 돌아오길래 그제서야 쿵쿵 뛰는 가슴이 겨우 가라앉았습니다.
* 인근의 XX백화점에서 저녁 찬거리랑 먹을 것 사러 갔다 왔답니다.
그래가지고 저녁밥은 얻어 먹었냐구요?
예!!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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