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53살(2007년 기준) 된 재봉틀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 시집오실 때 혼수로 갖고 오신 것으로 "Lions" 레텔(일본산)이 붙어 있죠.
제 나이보다 한살이 많은 이 재봉틀은 지금은 다리(주철)가 부러져
앉은뱅이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버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50년이나 손때가 묻었으니 애착도 생기겠죠.
6∼70년대, 자식들이 어릴때 살림이 넉넉치 못해 매양 새옷을 사입히는 건 쉽지 않으니,
천을 끊어와 손수 옷을 지어주셨습니다.
인조견이나 옥양목으로는 남방류를, 광목은 검은 물을 들여 바지류를
많이 만드신 걸로 기억합니다.
특히 어른용 치마 저고리나 바지, 두루마기 등등을 만들어서
집안 어른들 몽땅 입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시면서도 왜 옷가게는 안하셨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바늘구멍에 실 꿰는 일이 어려워 쓰시지도 못하지만.....
가끔 어머니한테 가면, 저는 꼭 그 재봉틀을 만져 봅니다.
차가운 감촉속에 서린 어머니의 손때를 느끼면서,
그 재봉틀에서 지어져 우리 5남매에게 입혀진 옷가지의 수효를 가늠해보곤 합니다.
지금 제 아내도 혼수로 재봉틀을 갖고 왔습니다.
전기로 돌리는 건데, 성능이 좋으면 뭐합니까.
제 아내는 재봉틀에 관한 한, 실 꿰는 순서도 몰라 한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사용법을 갈쳐 주겠다고 하면 도망가버립니다.
그래서 그 재봉틀을 제가 씁니다.
애들 티셔츠 팔꿈치나 긴바지 무릎에 빵꾸가 나면,
가위로 잘라내고 반팔티 또는 반바지로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가끔은 아내가 제 바지를 사 와서 세탁소에 보내 단을 올리겠다고 해 놓고는
가만두면 2주가 지나도 그냥 있어서, 성미 급한 제가 바로 올리고 말죠.
제가 이렇게 재봉질을 할 줄 아는 건 어려서 줄곧 어머니의 재봉질을 어깨너머로 봐 온데다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공업일반 시간에 재봉틀의 구조에 대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냄편이 재봉질을 잘 한다"고 자랑하는데,
그게 제 입장에서는 흉인지를 모르는 모양입니다.
어떨 때는 제가 재봉질하다 "딩동" 초인종 소리라도 나면 부리나케 안방으로 도망갑니다.
그랬던 저도 2∼3년 전부터는 시력이 나빠지면서 실 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걸 느낍니다.
이제, 재봉질을 아들한테 갈쳐야 되나, 딸한테 갈쳐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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