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벗이 있다면
구태여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맑은 새벽에 외로이 앉아 향을 사르고
산창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느 사람이라면
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어도 좋다.
봄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
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아침 일찍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초 잎에 손질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
구름을 찾아 가다가 바랑을 베개하고
바위에서 한가히 잠든 스님을 보거든
아예 도(道)라는 속된 말을 묻지 않아도 좋다.
야점사양(野店斜陽)에 길 가다 술을 사는 손님을 만나거든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가 다정히 인사하고
아예 가고 오는 세상 시름일랑 묻지 않아도 좋다.
----- 해안스님(1901∼1974)의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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