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지난 7월 11일 퇴근하니 아내가 삼계탕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란다.
청개구리 성향의 나는 "삼계탕 싫어, 그냥 맨밥에 굴비 짱아찌나 줘!" 하고 틍명스럽게
응대했더니 샐쭉해진 아내는 말없이 내가 요구한 대로 채려주고 자리를 비킨다.
저녁을 대충 때운 나는 거실에서 TV를 보다 주방쪽을 흘낏 보니 아내가 전기밥통과
씨름을 하고 있다.
삼계탕 준비하느라 고양되었다가 남편의 야멸찬 한마디에 풀이 죽어있는 아내가
조금은 안쓰러워 보여 "뭐해?" 하고 큰 소리로 물었더니 "밥통이 안열리네.."라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가서 보니 30센티나 되는 드라이버로 밥통을 분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하고 하나마나한 질문을 했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몰라..."한다.
그래서 "이리 줘 봐!"하고서는 드라이버를 건네 받아 밥통을 한바퀴 돌려 본 뒤
뚜껑과 몸체 사이에 드라이버 날을 밀어넣으며 지렛대처럼 힘을 주는 순간,
'쉬이익'이 아니고 '푸슈슉~~'하며 국물을 내 배쪽으로 내뿜는다.
'앗' 소리와 함께 계속 쏘아대는 국물 세례를 피해 샤워실로 내달리며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벗어던지고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삼계탕 국물 맞은 부위를 한참동안
식혔으나 시원한 느낌이 전혀 안든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 구급상자에 10년이 넘은 바세린 거즈 하나
들어있는 것이 기억나서 우선 알콜로 소독(세척 수준)하고 거즈를 완전히 펴서
환부에 발랐다.
특히 알콜로 소독할 때는 삼계탕 국물로 맞을 때 만큼이나 아팠다.
거즈를 고정시키려 반창고를 잘라 붙였더니 자꾸 떨어진다.
그래서 길게 30센티 정도로 잘라 길게 가로로 붙이니 고정이 된다.
첫날의 응급조치는 그렇게 해서 끝났다.
그리고 통증으로 인해 찌푸린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아내는 "정말 미안한데 자꾸 웃음이 난다"고 한다.
그냥 남편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고소해서 웃음이 났을 거라고 생각될 뿐
통증이 심해 웃는 아내가 괘씸하다는 마음이 안생긴다.
다음날 밖에 나와서 바세린 거즈를 사갔더니 아내도 똑같은 거즈를 사왔다.
그 후 매일 매일 소독하고 거즈 바르고, 소독하고 거즈 바르고.. 하는 과정이
한동안 되풀이되었다.
그러다 며칠 뒤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안마시는 걸 궁금해 하는
친구들에게 연유를 설명했더니 경향각지의 동기생들에게 전파가 되고...
이 소식을 들은 대구의 성형외과 의사 친구가 100명의 화상환자를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양의 약과 거즈, 소독약 등등을 라면박스 가득히 보내왔다.